쓰레기에서 신시장 개척

순환경제? 일회용 플라스틱 법적 정의조차 없다

2024-09-23 13:00:03 게재

부산서 11월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

“국내 기업 산업 전환 지원 속도 내야”

최근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지층을 형성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논란이 됐다. 인류세(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지질시대) 공식 지정 논의와 별개로 그만큼 쓰레기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이지만, 실제로는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서 활용되는 플라스틱을 100% 사용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정확히 무엇인지, 법적 정의조차 없어요.”

20일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대로 된 정의가 있어야 어떤 품목을 관리할 수 있을지 등 실효성 있는 계획이 나올 수 있다”며 “우리나라 국민만큼 분리배출을 잘하는 국가도 없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1월 25일부터 부산에서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열린다. 이번 회의는 올해 안까지 만들기로 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위한 최종 회의로 의미가 크다.

2022년 2월 28일 ~ 3월 2일 케냐에서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 추진 결의를 채택하고 총 5차례의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를 통해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 성안을 만들기로 했다. 플라스틱의 생산·사용·소비 등 전 생애주기 차원에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성안은 협약의 초안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합의된 문서를 만드는 일이다. 통상 성안 뒤 서명 비준 등의 과정을 거쳐 협약이 발효된다.

플라스틱 규제 협약 시급, 퍼포먼스하는 환경단체 회원들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 주최로 열린 ‘플라스틱 협약 대응 정부 입장 공개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강력한 플라스틱 규제 협약 참여와 국제협약 도출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플라스틱 오염 저감법 관련 신경전 팽팽 = 2025년 협약 체결을 앞두고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방법론을 둘러싼 신경전이 팽팽하다. ‘플라스틱의 생산 및 사용 자체를 줄여야 한다’ ‘재활용을 비롯한 폐기물 처리에 중점을 두자’ 등이다.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인 만큼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에서도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다.

2024년 4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는 당초 폐막일이던 2024년 4월 29일을 넘겨 4월 30일 새벽 2시 30분(현지 시각)에 끝났다. 국제회의가 애초 계획보다 늦게 종료되는 게 이례적이진 않지만 그만큼 쟁점 사항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4차 회의에서는 쟁점 사항들에 대한 참가국들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논의가 끝났다.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한 규제 대상 및 방식과 이행 수단 등 협약의 세부 항목에 대한 문안 간소화 작업을 우선적으로 진행했지만 의견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이다.

20일 환경부 관계자는 “원료 물질 생산 감축 외에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국제 규모로 확대하는 문제나 순환경제에 적합한 제품 디자인 등 논의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게다가 각 주제별로 국제 기준을 정해서 할지, 아니면 각 국가별로 자율적으로 할지 등 정해진 사항이 많지 않아 쉽지 않겠지만 이번 회의에 협약이 성안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하여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해 재활용하게 하는 제도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한다.

순환경제는 ‘자원 채취-생산-소비-폐기’라는 기존 선형경제 산업구조를 대체하는 체제다. 제품 생산부터 유통 소비 수거까지 모든 과정을 순환해 자원을 재사용하고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게 목표다. 유럽연합(EU)은 신순환경제 실행계획(New Circular Action Economy)을 통해 제품의 ‘생산→소비→폐기물 관리→재활용’으로 구성된 순환경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안정적인 재생원료 공급체계 구축 시급”=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동향뉴스(나태영 바르샤바 무역관)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특정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확대하자는 ‘단일 사용 플라스틱 지침(Single-Use Plastics Directive)’을 시행 중이다.

유럽연합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활용률이 떨어지는 폴란드 환경부는 2025년 1월 1일부터 재활용품 보증금 반환 제도(DRS, Deposit Return System)를 도입한다. 폴란드 국민 81%의 지지와 함께 정부는 2020년에 단계적 논의를 시작했으며 법안 시행 준비 및 관련 기반 시설 구축 단계를 거쳐 공식 시행을 앞두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2029년까지 플라스틱 재활용률 9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나태영 코트라 바르샤바 무역관은 동향뉴스를 통해 “재활용품 보증금 반환 제도 도입으로 생겨날 경제적 파급력은 한국 기업에도 긍정적으로 재활용 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특히 △용기 자동 반납 기기 △친환경 용기 제조업과 같은 분야에서 현지 대형 유통업체와 협력하는 등 현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국제 환경 규제를 잘 활용하면 국내 기업들에게 더 큰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연방정부도 2021년 11월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및 고용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 Act)’을 제정했다. 여기에는 재활용과 관리 기반시설 개선을 위한 예산 3억5000만달러가 포함됐다.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역시 2030년까지 재활용률 50%를 달성하기 위한 첫 ‘국가재활용 전략(National Recycling Strategy)’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미국 지방 정부들 역시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도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왕수안 코트라 시카고무역관은 해외시장 뉴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각광받는 미국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분석을 통해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플라스틱 규제 강화는 국가별 정책을 넘어서 국제협약으로 가시화되며 전세계 시장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므로 국내 폐플라스틱 재활용기업의 경우 새롭게 만들어지는 시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진출한 기업이라면 재활용 플라스틱 제품임을 부각시키고 물리적 및 화학적 전처리 공정과 더불어 고부가가치화의 핵심인 디자인을 접목한 재활용 소재에 대한 제품화 역량을 키우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일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석유화학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게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시장 상황을 제대로 분석해서 국내 기업들이 산업 전환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또 “국제협약 성안을 위해 논의되는 내용은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석유로 만든 1차 신재(재활용하지 않은 처음 원료) 사용을 줄이자는 것”이라며 “바이오플라스틱(재생가능한 원재료로 만든 플라스틱)이나 재생원료의 안정적인 공급 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하는데, 정부가 관련 계획을 발표하긴 했지만 기대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회용컵보증금제 시행 유예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8월 6일 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직원이 일회용컵 회수기를 시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협약도 중요하지만 실제 내용이 관건 = 어렵게 협약 성안이 돼도 플라스틱 오염 저감을 위해 얼마만큼 실질적인 내용이 담겼냐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플라스틱은 현대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소재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발명품이다. 가볍고 쉽게 썩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 특성은 인류에게 여러 혜택을 선사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물성이 도리어 독이 되면서 인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게다가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의 경우 온실가스를 뿜어내 지구 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해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과 재사용과 되채우기 기반으로의 체계 전환을 통해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회의 개최국으로서 생산감축을 통한 플라스틱 오염 종식 방안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일 환경부 관계자는 “합성수지재질 일회용 응원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등 플라스틱 재질에 대한 관리를 강화 중”이라며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해도 어느 제품인지 특정하기 위해서는 품목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현재 품목별로 관리하는 일회용품 관리체계와 동일한 결과가 될 수 있다”며 “국민들의 제도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직관적인 품목별 규제를 적용하고 같은 품목 내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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