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넷에 아들과 첫 가족사진 찍었어요"
성동구 ‘고민해결 소원성취함’
이웃과 소통·교류하도록 지원
“아드님, 어머니 한번 안아주세요. 눈도 맞춰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 그건 못해요. 한번도 안해 본 일이에요.”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학교 인근 한 사진관.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남기는 가운데 성수동 주민 박영자(74)씨가 50줄에 들어선 둘째 아들과 함께 사진관을 찾았다. 직전에 아들 양복을 사고 점심까지 함께한 참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각자 증명사진과 생애 첫 가족사진도 찍었다. 박씨는 “티브이 옆 사진 놓는 곳에다 둘 것”이라며 흐뭇해했다. 아들은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을 때 쓰면 좋을 것 같다”며 증명사진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23일 성동구에 따르면 구는 취약계층 노인들을 위해 ‘어르신 고민해결 소원성취함’ 사업을 진행 중이다.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근거한 사업인데 민선 8기 복지분야 구청장 공약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구는 “소원을 성취하고 그 과정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주민이 대상이다. 살면서 한번도 가족을 이뤄본 적 없거나 최근 10년 이내에 사별로 인해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을 잃은 주민을 우선으로 한다. 지난해 100가구를 대상으로 ‘죽기 전에 꼭 한번 이루고 싶은 소원’ ‘함께할 사람이 없어 마음속으로 품고만 있던 소원’을 물었는데 효도여행을 가장 많이 택했다. 구는 제주를 방문해 한라산과 용연계곡을 둘러보고 태권뮤지컬·곡예를 관람하는 일정을 짰다. 참가자들은 “평생 살면서 제주도라는 곳을 처음 가봤다”며 “제주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얻어 점심을 함께 먹는 사이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효도여행에 이어 송파구 잠실에 있는 수족관을 둘러본 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호텔에서 효도만찬을 즐긴 주민이 27명이었다. 나머지 32명은 물품지원이나 병원동행 의료지원 등 지역사회 서비스를 택했다.
올해도 각 동주민센터와 성동노인종합복지관을 통해 꼭 이루고 싶은 소원과 그에 얽힌 신청을 접수받았다. 박영자씨의 경우 1급 뇌병변 장애가 있는 고등학생 딸을 돌보며 혼자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는 둘째 아들과 가족사진 남기는 걸 택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이다. 이날 찍은 증명사진은 이른바 장수사진으로도 활용한다.
무엇보다 아들 양복을 마련한 게 가장 큰 기쁨이다. 그는 “3년 전 세상을 떠난 며느리 옷을 정리할 때 보니 쓸만한 게 하나도 없더라”며 “복지관에서는 여행이나 호텔 숙박을 하라고 했는데 아들 옷이 최고”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들을 향해 “내가 사준 것”이라며 “손녀 돌보는 주간보호센터 선생님한테도 보여주게 입고 가라”고 채근했다. 아내가 생존해 있을 때 가족사진 이후 어머니와 생애 첫 가족사진을 남겼다는 아들은 “가만히 보니 부부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주민들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1인당 40만원 가량이다. 주민들도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이웃이 소원을 이루도록 돕는다. 구는 전체 사업을 마무리한 뒤 소원성취 과정을 공유할 계획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바쁘게 살면서 이루지 못한 소원을 꼭 이루시길 바란다”며 “항상 어르신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성동구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