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늦어도 2026년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해야”

2024-09-24 13:00:11 게재

기후공시, 전 세계 투자자 중대 관심사로 떠올라

사업보고서 통해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전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극심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가 이어졌다. 기후 무역장벽은 높아져만 가고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 관련 리스크(위험) 등에 관한 기후공시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중대 관심사로 부각됐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또한 늦어도 2026년엔 지속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

더불어민주당 기후행동의원 모임 ‘비상’ 소속 의원들과 경제개혁연구소,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 민간 싱크탱크 관계자들이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후공시 의무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제공

◆의무공시 연기, 국제경쟁력 떨어뜨려 = 더불어민주당 기후행동의원 모임인 ‘비상’과 경제개혁연구소,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 민간 싱크탱크, 기후환경 비정부기구(NGO) 등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적어도 2026년엔 기후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초 금융위원회가 예고한 바와 같이 2026년부터 지속가능성 정보 의무 공시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시 의무화 로드맵에 △2026년(회계연도 2025년) 의무 공시 시행 △자산 2조원 이상 사업보고서 제출법인부터 공시 의무화 대상 점진적 확대 △법정 공시(사업보고서에 포함) △스코프 3(Scope 3)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의무 공시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 무역장벽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주요국들은 이미 2025~2027년 내로 공시 의무화 시기를 확정하고 법적 기반을 확립했다. 또 국제 규제와 공시 의무화에 대비해 국내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지난 8월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 중 90%가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기후정보 등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경영에서 지속가능성 위험과 기회를 파악하고 관리하도록 함으로써 불특정 다수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공시 의무화를 늦추는 것은 큰 실익이 없으며 오히려 국내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심화시키는 문제만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럽연합과 미국은 별도의 공시 기준을 수립했으며, 주요 20여개 국가 역시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기준에 따라 2025년~2027년 내 의무화 시행 시기를 정하고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며 “그런데 한국의 금융위원회는 아직도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 국제 자본시장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2025년부터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서 시작하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하고 2030년까지 코스피 상장사 전체에 적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작년 10월 금융위는 돌연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로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자율공시 아닌 법정공시 도입 필요= 이들은 또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는 거래소 자율공시가 아닌 사업보고서에 포함하는 법정공시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계의 주장처럼 지속가능성 공시를 자율공시에 기반하는 경우 투자자에게 유의미한 정보로서의 비교가능성, 신뢰성,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고, 거래소 공시로 도입할 경우 허위·부실 공시에 대한 제재가 약해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지속가능성 공시는 자본시장법을 통해 법정 공시로 도입해 허위·부실 공시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3/4 이상을 차지하는 스코프3(협력망 포함 탄소배출량 관리) 배출량 정보도 의무 공시 내용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은 양적으로도 중대한 만큼, 전후방 가치사슬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부과할 필요가 있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어떤 활동에 집중되는지를 투자자가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정보다. 이에 따라 주요국들도 ISSB 기준에 따라 스코프 3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각국의 ESG 공시 정책은 전 세계 투자자의 중대한 관심사”라며 “책임투자원칙(PRI),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 지속가능한 증권거래소 이니셔티브(SSE Initiative) 등 120개 투자 관련 기관은 지난 5월 ISSB의 ESG 공시 기준의 2025년 도입을 국제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가 결성한 세계 최대 책임투자 협의체인 PRI는 국내 NGO들이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을 법정 보고 체계에 2026년부터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PRI는 “현재 일관성 있고 고품질의 지속가능성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은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자본이 넓은 지속가능성 목표를 향해 효과적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PRI는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에도 의견서를 제출해 현재 논의 중인 초안이 국제 정합성, 비교가능성 및 신뢰성 원칙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ISSB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금융위는 2021년부터 ESG 금융제도 전반을 검토해 제도적 기반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겠다고 했음에도, 지금까지 첫 단추인 공시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는 다른 주요국에 비해 매우 후진적인 행태이며, 비교적 늦은 2027년을 의무화 시기로 잡고 있는 일본의 경우도 이미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회계기준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75%, 국내 투자자의 85%가 기업에 대한 스코프 3 배출량 공시 의무화 원칙이 담긴 공시 초안에 동의했다. 지 변호사는 “국내 주요 기업도 정부의 빠르고 명확한 로드맵 제시와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위의2026년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실시가 우리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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