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지키지 않는 ‘장애인고용’…연 100억대 혈세로 메꿔
부담금제도 시행하는 기재부도 법 제대로 안 지켜
국방부·교육부·한국은행은 최근 5년간 ‘고용’ 외면
민간기업 58%가 법 안지켜 … “정부 모범 보여야”
정부부처가 법에서 정한 장애인 의무고용을 외면, 연간 백억원대의 혈세를 낭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에서는 의무고용대상의 58%인 1만7928개 기업이 장애인 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마저 법을 지키지 않고 았는 상황이어서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돈으로 막는게 더 효율적’이란 사회인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관계부처와 국회 등에 따르면 부담금 정책을 운용하는 기재부를 포함해 국방부와 교육부 등 정부부처들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해 5년간 501억원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고용법)에 따라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한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고용 사업주에 미달 인원에 비례해 부과한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국가·공공기관 3.8%, 민간 3.1%다.
◆법 안지키는 국방부·교육부 =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국방부와 교육부는 지난 5년간(2019~2023년) 장애인 의무고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두 부처만 463억원을 장애인고용부담금으로 납부했다.
국방부는 지난 5년 내내 공무원과 비공무원 장애인 고용률 모두 3%를 밑돌았다. 지난해에는 공무원 장애인 고용률 2.19%, 무기계약직 등 비공무원 장애인 고용률 2.02%로 최근 5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장애인고용법은 군인 등을 장애인 고용의무 제외 직종으로 정하고 있다.
같은 기간 교육부의 공무원 장애인 고용률도 2.27~2.7% 수준에서 맴돌았다. 교육부 비공무원 장애인 고용률은 이보다 높은 2.93~3.24%였지만 역시 법정 의무고용률(3.8%)에는 미치지 못했다. 국방부와 교육부는 정부부처 중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가장 많이 납부한 부처 1·2위를 기록했다. 이들 부처는 지난 5년 동안 각각 297억6300만원, 166억100만원을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수은·KIC 5년간 한번도 못지켜 = 장애인 고용부담금 정책을 운용하는 기재부도 최근 3년간 고용의무를 위반해 3254만원을 납부했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이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 등 총 8곳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기관이 지난 5년간 납부한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모두 22억5000만원으로 확인됐다. 이 중 수출입은행이 5년간 7억7800만원, 한국은행은 6억6000만원을 납부했다.
특히 지난 5년간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한국통계정보원은 단 한 차례도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한국은행은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장애인 우대제도’를 실시해 장애인 고용률을 2019년 2.4%에서 2023년 2.8%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안도걸 의원은 “공공기관이 고용부담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식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공공기관이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정책을 시행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부담금 납부액은 총 15억6300만원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중 장애인고용부담금 납부액 1위 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이다. 지난 5년간 총 6억4700만원을 납부했다. 2위는 대한적십자사, 3위는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으로 각각 3억1800만원, 1억3900만원을 부담금으로 납부했다.
◆더 심각한 민간기업 = 민간의 경우 절반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장애인 고용 의무가 있는 민간 기업 3만897곳 중 1만7928곳(58%)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지난해 장애인 고용 의무를 어긴 기업 8040곳은 총 7443억원의 부담금을 냈다.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4년 동안 기업들이 낸 부담금 총액은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장애인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기업의 경우 매달 의무고용 1인당 최저임금의 100%(약 206만원)를 내는 데 그친다. 장애인을 한 명만 채용해도 납부 금액은 1인당 173만원으로 줄어든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주는 기업이라면 장애인 직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효율적인 셈이다.
안도걸 의원은 “민간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앞장서서 법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