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곳간 2년째 펑크 …‘여소야대’ 국회 심의 피하려 또 꼼수대응

2024-09-26 13:00:21 게재

작년 56조 이어 올해 30조원대 세수결손 … 내수대응 실탄도 비상

정부 ‘경기낙관론’ 비판 커질 듯 … 주요국과 비교해도 오차율 더 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오른쪽)이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세수 재추계 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26일 기획재정부가 세수 재추계를 통해 공개한 올해 예산 대비 세수 부족 규모는 29조6000억원이다. 지난해 50조원대 세수 부족에 이어 2년째 대규모 세수 펑크다.

정부는 이날 “재원대책은 국회,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하지 않고 정부가 ‘알아서 편집하겠다’고 했다. 작년에 이어 꼼수대응 논란이 커지는 배경이다. 추경을 편성하려면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까다로운 여소야대 국회상황을 피하기 위한 꼼수대응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2년째 대규모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면서 재정의 경기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올해 대규모 세수 펑크로 작년 정부가 고수한 ‘경기 상저하고’ 전망이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경기 낙관론’에 대한 비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에서만 14.5조 결손 = 기획재정부가 세수 재추계를 통해 공개한 올해 예상 세수는 337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정부가 짠 세입 예산인 367조3000억원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수 부족의 주된 원인은 기업실적 부진에 따른 법인세 감소다. 정부는 이날 재추계를 통해 올해 법인세수 전망을 예산(77조7000억원)보다 14조5000억원 적은 63조200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민생 지원을 위한 유류세율 인하, 물가 안정을 위한 긴급 할당관세 등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 관세 등도 총 6조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기금 여유 재원과 집행 불가 사업 불용 등을 통해 부족한 세수를 최대한 메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2년째 대규모 세수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당장 구체적인 재원 대책은 수립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다.

◆세수결손, 어떻게 메울까 = 지난해에는 오랜 기간 지속된 달러화 강세 등 영향으로 축적된 외국환평형기금의 여유 재원을 끌어썼다. 하지만 올해는 37조원 규모의 공자기금 상환이 세입예산안에 이미 반영돼 있어 추가적인 외평기금 투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제때 재원을 충당하지 못하면 국세의 40%에 해당하는 지방교부금도 영향을 받아 지방 사업에 차질을 줄 수 있다.

무리한 기금 전용이 이뤄질 경우 기금의 본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약 20조원의 외평기금을 세수결손에 쏟아부으며 ‘외환 방파제’ 부실 우려를 자초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재원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일부 사업의 사실상 강제 불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기재부는 기금 관계 부처와 국회 등과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재원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부진한 내수경기 대응력도 우려 = 윤석열 정부의 고소득자·대기업 감세 정책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2년째 세수 펑크까지 맞물리면서 재정 기반이 급속도로 취약해진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취약한 재정 기반은 재정의 부실한 경기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반년 넘게 계속된 수출 호조세에도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재정의 경기 마중물 역할에 대한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감소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2.1% 줄었다. 가계 여윳돈인 가구 흑자액(실질)은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째 줄며 소비 여력을 죄고 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커지는 대외 불확실성까지 악재로 부상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녹록지 않은 세수 탓에 재정의 경기 대응 역할이 지나치게 위축됐다는 지적이 많다.

◆4년째 세입 전망 어긋나 = 최근 반복되는 대규모 세입 전망 ‘오차’와 함께 정부의 ‘경기 낙관론’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세수 전망은 2021년 이후 4년째 수십조원 규모의 오차를 내며 실제 세수와 어긋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세수는 당초 전망치보다 각각 61조3000억원, 52조6000억원 더 걷혔다. 예산 대비 오차액 비율인 오차율은 각각 21.7%, 15.3%에 달했다.

반대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는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세수 펑크에 이어 올해 29조6000억원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오차율은 -14.1%였다.

이에 따라 장밋빛 경제 전망을 과신한 정부에 대규모 세수 펑크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뎠음에도 정부가 이른바 ‘상저하고’ 전망을 고수한 탓에 세입 전망을 냉정하게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세수오차는 다른 주요국과 비교해도 큰 편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보면, 주요 5개국(미국·캐나다·영국·일본·독일)과 비교해 한국의 2020~2022년 평균 세수오차율(11.1%)은 영국(12.7%) 다음으로 컸다. 같은 기간 미국(8.9%)·일본(8.6%)·독일(7.4%) 평균은 10% 미만이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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