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34년 후 장질환 사망 “인과 없어”
법원 “마약성 진통제 복용 … 업무상 재해 아냐”
하반신 완전마비 등 산업재해로 34년간 누워서 투병하다 장 질환으로 숨진 근로자에 대해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기존 재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거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광부였던 A씨는 43세였던 1986년 업무상 재해로 양측 하반신 완전마비, 방광 결석으로 누워서 투병하는 요양생활을 했다. 2013년 6월 치료를 마치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장해등급 1급(하반신 완전마비)과 3급(진폐증) 판정을 받았다. A씨는 2014~2019년에도 방광 결석, 신경인성 방광, 진폐증과 관련해 치료를 받았다.
그러다 결국 A씨는 2020년 9월 한 병원에서 77세를 일기로 끝내 사망했다. 직접 사인은 ‘독성 거대결장’이었다. 독성 거대결장은 장이 거대하게 팽창하는 질환으로 염증성 장 질환, 패혈증 등에 의해 발생한다.
유족은 “A씨가 34년 전 겪은 업무상 재해로 오래 누워서 투병생활하면서 심신이 쇠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졌고 합병증으로 만성통증과 만성변비에 시달렸다”며 “마약성 진통제를 늘려 복용했다가 숨진 것이기 때문에 기존 업무상 재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기존에 산재로 인정받은 질병이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독성 거대결장의 가장 흔한 발생 원인은 염증성 장 질환이며 그 외 패혈증과 장관 감염 등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마약성 진통제 복용이 독성 거대결장을 유발 또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하나, 이는 상관관계에 대해 통상적·이론적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며 “마약성 진통제 복용이 사망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기존 승인상병 및 그 합병증으로 인한 전신쇠약과 면역력 저하 상태가 사망과 조건관계를 갖는다고 볼 여지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망인의 사망에 유력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거나 기존 승인상병 및 그 합병증에 내재하는 고유한 위험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된 것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입고 요양 중 새로운 병이 생겼을 때 이 역시 업무상 재해로 보기 위해서는 애초 업무상 재해와 인과관계가 있음이 밝혀져야 한다”며 “원고가 제출한 사정만으로는 사망과 기존에 승인된 상병·합병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