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휴학 승인에 의정갈등 새 국면
1학기 학사 운영 사실상 불가능 판단한 듯 … 교육부 경고에도 확산 가능성 배제 못해
정부의 휴학 불가 방침에도 서울대 의대가 학생들의 휴학계를 일괄 승인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의대생들이 수업 거부에 나선지 7개월 만으로 전국 의대 40곳 중 첫 사례다.
이에 교육부가 현지 감사에 나서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의정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특히 의대생들이 ‘증원 철회 없이는 복귀하지 않겠다’며 요지부동이라 확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대 의대는 지난달 30일 의대 학생들의 1학기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했다. 교육계 등에서는 서울대 의대가 휴학을 승인한 것은 학생들이 1학기를 정상적으로 이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그동안 정부는 집단 휴학을 인정할 수 없다며 1학기 성적 마감 기한을 학년말로 바꾸는 등 복귀를 유도해왔다.
그러나 의대생과 교수 등은 2학기에 1학기 수업까지 듣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휴학 승인을 요구했다. 의대 커리큘럼은 연간 빼곡하게 설계돼 있어 서너 달 만에 따라잡기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2학기 출석률도 2.8%에 불과 = 여기에 정부의 압박과 당근책에도 의대생들의 복귀 움직임은 거의 없다.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학년도 2학기 전국 40개 의대의 재적생 1만9374명 중 출석 학생은 548명(2.8%)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대 증원에 대한 찬반 이슈라기보다는 정부 가이드라인대로 해서 학생들이 돌아오더라도 1년 치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상 학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정부측에서 고육지책을 썼지만 교육현장에서는 현실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서울대 학칙에 따르면 의대생들의 휴학은 의대 학장이 승인하기 때문에 총장 등 대학 본부가 관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동맹휴학은 정당한 휴학 사유가 아니다”라며 “서울대 의대 학장의 독단적 휴학 승인에 대해 즉각적인 현지 감사 등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압박에 나섰다.
이어 교육부는 “중대한 하자가 확인될 경우 엄중히 문책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을 예정”이라며 “(40개 대학에) 다시 한번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의 즉각적인 반응은 서울대 의대의 상징성이 주는 무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칫 나머지 대학에서 일부라도 1학기 휴학을 승인한다면 정부가 주장해왔던 ‘동맹 휴학 불가’ 원칙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교수단체, 학장 결정 지지 = 반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다른 의대들의 휴학계 승인을 독려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일 성명을 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의대생을 다음 학년으로 진급시킬 순 없다”며 “다른 의대 학장, 대학 총장께서도 곧 같은 조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휴학 승인 권한이 대학 본부에 있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교육부에 휴학 승인을 요구하는 다른 대학의 목소리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전국의대학장모임인 한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지난달 말 교육부에 ‘휴학 허용’을 공식 건의했다.
정부는 의대생 복귀 마지노선을 11월로 미룬 상황이다. 교육부는 의대 학부 수업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행하면 15~20주 안에 두 학기(30주)를 모두 이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휴학이나 유급을 승인할 경우 내년에 신규 의사 3000여명이 배출되지 않는다. 또 의대 예과 1학년 학생들은 내년 7500여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전공의 복귀도 요원 = 교육부와 의대생 사이에서 각 대학은 난감한 상황이다. 당초 교육부가 정했던 의대생 복귀 ‘골든타임’으로 꼽은 9월을 넘기면서 현실적으로 휴학이나 유급을 피할 뾰쪽한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 기준으로 전국 의대 40곳의 재적 인원 1만9374명 중 2학기에 등록한 학생은 653명(3.4%)에 불과했다.
한편 의정갈등의 핵심인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공의들에 사과하고, 대한의사협회가 2025년도 의대 증원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에서 의정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왔다.
하지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다”며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를 재확인했다.
박 위원장은 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공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면서 “현 정책을 강행할 경우 정상적인 의학 교육 역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장세풍 기자 연합뉴스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