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소득불평등뿐 아니라 소비불평등 고려한 정책

2024-10-04 13:00:03 게재

한국경제는 20세기 후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이같은 고도의 양적성장이 가능했던 가장 주요한 이유는 정부가 수출을 통한 소득증대를 목표로 경제발전을 직접 계획·실행하는 중앙집권적 관리경제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양적성장 과정에서 모든 소득계층이 소득과 소비의 증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 경제개발단계에서 자본이나 기술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한국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저소득계층인 미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점진적으로 상승해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부주도형 산업화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이 점차 증폭되면서 경제적 효율성과 경제성장이 둔화됐고, 경제적 불평등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경제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이후부터 산업구조가 미숙련노동자 중심의 경공업에서 자본과 높은 기술수준을 갖춘 숙련노동자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실제로 소득분배구조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소득불평등이 전례 없이 심화되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최근 수년간 전세계적으로 지속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부와 소득의 상당한 재분배 효과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계층간 소득과 소비의 격차를 확대시켰다고 분석되고 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더라도 물가상승률만큼 소득이 증가한다면 실질소득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개인적인 경제적 후생의 변화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경기회복 상황에서 지속적인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영업자나 중하위소득계층의 명목소득의 증가가 충분하지 않아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간 경제불평등 논의는 소득지표에 집중

경제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소득보다 소비와 여가를 사용해 개인의 효용과 사회후생을 측정해왔다. 소득이 개인 또는 사회의 생활수준과 경제규모를 측정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지표임에는 틀림없지만 사회구성원이 체감하는 행복 또는 만족은 직접적으로 소비나 여가행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충격이나 제도의 변화로 인한 사회적 편익(비용) 변화를 일반적으로 평균적인 가계의 소비변화로 계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된 논의는 주로 소득불평등에 집중되어 왔다. 그 이유는 우선 소비자료에 비해 소득자료가 보다 객관적이고 자료수집 또한 용이하기 때문이다. 주로 서베이를 통해 가계소비행태를 파악하는 소비자료는 소득자료에 비해 태생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지고 상당한 측정오차(measurement error)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는 현재 소득수준에 의해 주도적으로 결정되므로 소득불평등이 소비불평등을 어느 정도 적절히 대변할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적이고, 실제로도 오랫동안 소득불평등과 소비불평등의 동조화 현상이 지속되어 소비불평등을 별도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최근 소득불평등보다 소비불평등의 변화폭이 커지는 등 소득불평등과 소비불평등 간의 안정적인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되면서 소득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불평등 측정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사회후생 관점에서 정부정책을 수립하고 운용하는 데 있어서도 소득불평등 외에 소비불평등의 변화를 추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평탄화(consumption smoothing) 유인으로 가계는 저축(차입)을 통해 일정 수준의 소비를 유지하려고 하며 이로 인해 소비보다 소득의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소득불평등 뛰어넘는 소비불평등 확대

만일 경제충격으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소비불평등의 변화가 제한적인 상황이라면 소득충격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과 같은 개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소득불평등의 심화가 계층간 소비불평등을 확대하는 경우 사회후생 증대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될 수 있다. 따라서 소비불평등의 상대적인 변화추이에 따라 소득불평등의 변화에 대한 정책적 평가 및 정부의 정책방향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의 주 대상인 하위소득계층의 경우 근로소득 이전소득 등 다양한 종류의 소득으로 구성된 소득자료가 측정오차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또한 현금을 이용한 소비지출이 줄고 전자상거래가 급격히 확대되는 등 소비패턴의 변화로 보다 양질의 소비자료의 활용이 가능해져 이제는 소득 대신 소비를 직접적으로 활용해 경제적 후생 변화를 평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최근 실증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이전까지는 소비불평등의 변화가 소득불평등 변화추이와 거의 유사해 소득변화는 주로 일시적인 경제충격에 의해 발생했으며 소비불평등에 제한된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금융위기와 팬데믹을 거치며 소득불평등의 심화보다 더 큰 폭으로 소비불평등이 확대되었다. 이는 일시적인 소득충격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영구적인 충격에 의해 생산과 고용 등 실물경제환경이 변화돼 소득불평등의 변화를 뛰어넘는 계층간 소비불평등 확대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같은 최근의 급격한 소비불평등 변화는 구조적인 소득충격 외에도 전세계적으로 세대간 소비의 이전이 보다 활발해졌다는 사실에도 기인한다. 특히 상위소득계층에서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이전되는 소비재의 비중이 소득이전에 비해 보다 급격히 증가한다고 보고된다.

개별 소비지출구성항목의 소득계층별 변화를 파악함으로써 심화된 소비불평등의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육 가사서비스 교통과 같은 선택소비재뿐만 아니라 식료품과 같은 필수소비재 지출에 있어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더욱이 저소득층 가구들은 소득감소를 체감하면 특히 필수소비재의 소비에 있어 소비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양을 줄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상품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어 실제 계층간 소비격차는 더욱 클 가능성이 있다.

반면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과 같은 내구재 소비의 경우 하위소득계층의 내구재 보유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고소득계층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이 또한 가격과 성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특정 내구재 품목의 보유여부를 파악한 것이므로 내구재 소비로부터 얻게 되는 계층간 효용의 격차가 줄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지출 감소가 여가 증가로 상쇄된다면 경제적 후생에는 변화가 없을 수 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하위소득계층은 상위소득계층에 비해 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보내고 최근 그 격차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여가시간 증가는 실업과 같이 비자발적인 이유가 주된 원인이어서 경제적 후생 측면에서 소비불평등 심화를 보완하지 못한다.

소득재분배 복지대책에 매몰되지 말길

대내외 경제환경이 구조적으로 급격하게 변환되는 시대에서 현재 가계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의 심화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음을 명시해야 한다. 오히려 소비패턴의 변화와 계층간 소비불평등의 심화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보다 큰 관심과 이해를 통해 경제 후생을 증진시키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소비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소득재분배라는 복지대책에 매몰되기보다 소득불평등과 소비불평등을 보완적으로 고려해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영세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