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국정리더십 공백 장기화를 우려한다

2024-10-04 13:00:02 게재

지금 세계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카오스 그 자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이 다 돼가도록 비상구조차 보이지 않고, 이란을 전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스라엘의 도발로 중동에서도 전쟁의 암운은 더 짙어졌다. 세계정세를 뒤흔들 미 대선의 향배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세계경제에도 침체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미 연준은 ‘빅컷’, 중국 인민은행은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 인하로 선제대응에 나섰다.

국내정세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각종 경제지표는 하강을 가리키고, 미중갈등 속에 한국 산업은 고사위기다. 의정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지금 우리 국정리더십은 거의 실종상태다. 특히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관계는 점입가경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 문제까지 끼어들면서 상황은 아수라판으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한동훈 갈등에 김건희 여사 문제까지 등장

최근 윤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오기정치’ ‘사감(私感)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한 대표에 대한 그의 태도는 지지여부를 떠나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두번 독대요청을 사실상 모두 거절했다. 그냥 거절이 아니라 추석 직후 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는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니 2일 원내 지도부와의 만찬에는 아예 초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당신과는 말을 섞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불안정한 세계정세와 국내상황을 고려하면 독대요청이 없더라도 만나 국정운영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게 마땅하지만 대통령이 오히려 어깃장을 놓고 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다시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민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최저 지지율(한국갤럽), 국민 10명 중 4명으로부터 신뢰도 0점(시사인·한국갤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대통령을 보노라면 ‘정말 대한민국 국운이 다했나’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다.

이런 와중에 용산은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에 눈길을 주고 있다고 한다. 친윤세력의 쪽수를 담보로 한동훈이 아닌 미래권력을 자신들이 선택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6년 총선 패배 후에도 친박의 쪽수만 믿고 상왕정치를 하려 했던 박근혜 청와대의 시도가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현재 한 대표는 사실상 고립무원 상태다. 용산으로부터 배척당하고, 당내에서도 치이고 있다. 여당 국회의원 중 친한(親韓)계를 꼽으라면 열개 손가락이 남을 지경이라고 한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62.8%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 지지층조차 지금 그의 리더십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 대표측은 7일 시작될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 관련 의혹들이 제기되고 국민 여론이 더 악화되면 당내 의원들도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쌍특검도 적극 추진할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 자체가 한 대표 자신의 ‘정치력 없음’을 반증하는 시그널일 뿐이다. 임기를 절반 이상 남긴 대통령이 고분고분 미래권력의 말을 들어줄 리 없다는 것은 상식인데, 현재권력을 밟고 넘어갈 결기도 없으면서 야당의 한방에 자신의 정치 명줄을 건 꼴이기 때문이다. 그런 ‘천수답 정치’로는 한 대표의 미래는 없다. 지금 한 대표의 선택지는 용산에 굴복하거나 각을 제대로 세워 자기정치를 하는 양자택일밖에 없다.

없느니만 못한 국정리더십은 없는 게 나을 수도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갈등의 결말은 어떻게 날까. 한 대표측 기대처럼 국정감사에서 용산이 더 궁지로 몰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의 언론 제보자가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는 입장인 데다, 이 밖에도 여러 건의 제보들이 야당 의원실로 쏟아지고 있어서다. 혹시라도 국감장에서 김 여사 육성이나 민감한 내용이 나온다면 윤 대통령은 거의 식물상태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한 대표의 여권장악력을 높여줄 것 같지도 않다.

우려스러운 것은 여권의 투톱이 공멸하고 국정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이다. 야당이 다수라고 해도 국정을 대신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의 식물화와 국정리더십 공백 장기화로 인한 외환위기 경험은 그냥 역사책 속의 얘기가 아니다. 상왕정치를 꿈꿨지만 끝내 민심의 바다에 침몰했던 박근혜 사례가 재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

대혼돈의 시대, 대한민국은 과연 안팎의 위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없느니만 못한 지금 같은 국정리더십이 무너지는 게 차라리 나은가?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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