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항만 파업 종료, 임금 6년간 62% 인상 합의

2024-10-04 13:00:03 게재

미 정부, 항만파업 해결위해 HMM 등 선사 압박 주효

사용자단체에 포함 … 바이든, 항만노동자 임금인상 지지

항만자동화 등 쟁점 남아 … 내년 1월 15일까지 협상 계속

미국 동부·걸프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이 3일만에 타결됐다. 동부·걸프지역 36개 항만노동자들이 가입한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와 사용자측 연합인 미국해사동맹(USMX)는 3일(현지시각) 공동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임금인상안에 대해 잠정 합의에 도달했으며, 모든 다른 미해결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2025년 1월 15일까지 계약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며 “(합의는) 즉시 발효돼 파업이 중단되고 모든 작업이 재개된다”고 발표했다. 미국 언론들은 임금인상안이 6년간 62% 수준인 것으로 전했다.

미 동부지역 항만노동자들이 1977년 이후 첫 파업에 들어가면서 세계 공급망에 미칠 파장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다만 이른 시간 안에 타결된 배경에는 미국 정부가 파업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지지하며 나선 것도 작용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용자 측에 포함된 HMM 등 글로벌 선사들이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벌어들인 이익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HMM을 포함 CMACGM(프랑스) 코스코(중국) 에버그린(대만) 하팍로이드(독일) 머스크(덴마크) MSC(스위스) ONE(일본) 양밍(대만) 짐(이스라엘) 등은 항만노동자들과 단체협상을 진행하는 사용자 측 연합인 미국해사동맹(USMX) 회원이다. 미국해사동맹은 해운기업, 터미널 운영자(직접 고용주), 항만협회로 구성돼 있다.

1일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의 파업이 시작된 후 뉴저지주 뉴어크항구에서 퇴근한 노동자들이 부두 밖에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AFP)

◆백악관, 파업 이후 선사들 할증료·운임인상 감시 밝혀 = 백악관은 지난 1일(현지시각) 파업이 시작된 후 항만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지지하며 코로나 대유행 이후 사용자단체가 얻은 이익이 근로자들에게도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이든 미 대통령의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글로벌 해운기업들은 코로나 이후 기록적인 이익을 냈고 어떤 경우에는 그 전에 비해 800% 이상 추가 이익을 냈다”며 “이런 이익에 따라 임원 보상도 증가했고, 이익은 기록적인 비율로 주주에게 반환됐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이어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항구를 계속 개방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노동자들이 의미있는 임금 인상을 얻는 것은 공정한 일”이라고 밝혔다.

바이든은 미국 정부가 USMX 이사회를 포함한 외국 해운사에 이익이 되는 모든 가격 인상 활동을 감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MM은 7일부터 운임인상을, MSC 머스크 하팍로이드 CMACGM 등 다른 글로벌 선사들은 다양한 할증료 부과 조치를 발표한 상태다.

미국 해운조선·물류 전문 미디어 지캡틴, 월드카고 등에 따르면 미국해사동맹은 바이든 대통령이 공정한 협상을 언급한 이후 노조에 다시 협상할 것을 촉구했고, 노조는 임금인상과 함께 항만자동화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환기했다. 사용자측은 50% 임금인상을 제안했지만 노조측은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자동화에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일 미 동부·걸프 연안 항만노동자들이 1977년 이후 처음으로 파업에 돌입한 것은 항만자동화에 완강히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노사 양측이 임금인상안에는 합의했지만 항만자동화 부분은 잔여 쟁점으로 남았다. 새로운 협상 종료시점으로 제시된 내년 1월 15일은 미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이다.

미국 동부 해안과 걸프 지역 36개 항만노동자가 가입한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 가 1일(현지시각)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사진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던달크 터미널에서 작업이 중단된 모습. 사진 연합뉴스· AFP

◆플로리다주, 주방위군 투입해 항구운영 재개 밝히기도 = 이번 파업은 미국 정부가 항만파업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줘 향후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항만파업이 가져올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관계법(태프트-하틀리법)에 따라 개입, 파업과 직장폐쇄 조치를 강제 중단하고 항만운영을 가동할지 여부가 계속 주목받았다. 이 법을 적용하면 대통령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항구가 운영을 재개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디센티스 미 플로리다주지사는 3일 파업의 영향을 받는 주 내 4개 주요 항구에 플로리다주방위군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디센티스 주지사는 “허리케인 헬렌으로부터 미국 동남부를 복구하는 동안 식량 장비 물품의 유통을 방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해운·조선 전문미디어 지캡틴에 따르면 각계각층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태프트-하틀리법을 발동할 것을 요구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동부·걸프지역 36개 항구가 전국의 모든 컨테이너 수출의 68% 이상과 수입의 56%를 처리하고, 하루 무역 규모는 21억달러를 초과한다”며 “노사협상이 복잡하겠지만 (바이든 대통령에게) 태프트-하틀리법을 적용하고 파업을 멈춰 우리 경제를 보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 최대 규모 소매협회 엔알에프(NRF)도 대통령에게 태프트-하틀리법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권한과 도구를 사용해 항구 운영을 복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270개가 넘는 지역·주·연방무역협회연합도 단체협상 절차가 파업을 종식시키는 좋은 방법이지만 ‘우리 산업과 경제에 대한 엄청한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행정부가 이 상황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를 간청한다고 밝혔다.

미 의회도 정부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교통·인프라위원회 위원장 샘 그레이브스(미주리주. 공화당)와 해안경비대 및 해상교통소위원회 위원장 대니얼 웹스터(플로리다주. 공화당)는 대통령에게 법에 따른 권한을 행사해 항구운영을 재개하고 당사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불러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노조는 정부의 강제조정 명령은 생산성 감소로 이어지고 항구운영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부·걸프지역 항만노동자들이 가입한 국제항만노동자협회(ILA) 해럴드 대겟 노조위원장은 “태프트-하틀리법은 90일 동안 냉각기간을 갖고 직장에 복귀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노동자들이 제대로 일을 할 것 같은가”라며 “회사는 시간당 30회 하역작업이 8회로 줄어드는 동안에도 급여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수출입물류비상대응반 긴급 점검 = 미국 동부항만 파업이 끝났지만 정부는 4일 예정된 수출입 물류 비상대응반 긴급 점검 회의를 그대로 개최하기로 했다. 4일 서울 여의도 한국해운빌딩에서 송명달 차관 주재로 열리는 회의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한국해운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HMM 등 관련 국적선사들이 참여한다.

해수부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최근 중동분쟁 격화에 따른 우리 선박·선원의 안전과 해상물류 영향을 점검하고, 미 동부항만 파업으로 해상 공급망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등을 살핀다.

해수부는 후티 반군이 홍해 해상을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 주요 선사들이 홍해 운항을 중단하고 남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를 시작한 이후부터 민관합동 비상대응반을 운영하며 수출입 물류를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주요 수출 항로를 중심으로 임시선박을 17회 투입하고, 선박에 중소기업 전용 선적공간으로 매주 6m 길이 컨테이너 1795개를 실을 수 있는(1795TEU) 공간을 배정해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송 차관은 “미 동부항만 파업은 일단 끝났지만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해상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민관합동 수출입 물류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임시선박 투입, 중소기업 전용선복지원 등을 통해 수출기업들의 애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캡틴은 3일(현지시각)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파나마 국적 유조선을 무인 수상함(USV)으로 공격하는 새로운 영상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일 발생한 이 사건 당시 선박은 짐을 싣지 않은 상태였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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