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선 의대교수들 “의평원 무력화 중단”

2024-10-04 13:00:03 게재

교수단체 주최 첫 집회 … 대통령실 앞서 ‘교육 인증’ 관련 시행령 개정 중단 요구

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기 위해 의대를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무력화하려고 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올해 의사 국가시험 실기 응시자가 지난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신규 의사 배출과 공중보건의(공보의)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 40개 의대교수들은 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 광장에서 ‘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교수들은 시국 선언문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고 의료 발전을 통해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던 의료 시스템이 정부의 아집과 독선 속에 단 8개월 만에 완전히 무너지고 있음을 보며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10년 뒤에 오히려 남아돌지도 모르는 의사 수를 과학적이지 못하고 주술적인 숫자로 계산해 추계하고, 개혁을 빙자한 개악만을 남발하며 의료시스템 자체를 허물어뜨리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은 또 “오로지 대통령 한 명의 잘못된 자존심과 체면을 위해서라면 우리 다음 세대들의 국민 건강은 내팽개쳐지고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정부의 모습에 전국 의대 교수들은 좌절하고 분노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수들은 시국 선언문에서 △의평원 무력화 시도 즉각 중단 △의대증원 즉각 중단 △필수의료 패키지 폐기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파기 △책임자 즉각 처벌 등을 요구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 결의대회 의대교수들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정부 ‘불인증 처분 1년 유예’ 추진 =

앞서 지난달 25일 교육부는 의대 증원으로 의과대학 교육 여건이 나빠져 의평원의 인증 평가에서 불인증을 받더라도 처분을 1년 이상 유예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인증하는 기관인 의평원이 늘어난 정원으로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의대에 ‘불인증 평가’를 내려도 곧바로 처분하지 않고 보완 기간을 주겠다는 취지다.

이날 최창민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분명 의대 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며 “불과 6개월 만에 이제는 의평원에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평원을 말살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위원장은 “곧 시작되는 국감에서 의평원 무력화와 의대 부실화를 초래하는 모든 과정을 철저히 밝혀달라”며 “정부의 의평원 말살 시도에 대해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의정갈등) 8개월이 지난 지금 정부는 2000명이라는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의대 증원으로 제대로 된 의학교육이 불가능해지자 의평원 무력화를 통한 후진국 수준의 의사를 양산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는 처음으로 교수들이 모인 집회 자리다. 대한민국 의료 무력화를 막기 위해 모였다”며 “우리 투쟁은 의학교육 정상화, 대한민국 의료 정상화가 될 때까지 끝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결의대회는 전의비 주관, 전의교협 주최로 열렸다. 집회 신고 인원은 500명이고, 경찰 추산 350명, 주최 측 추산 800명이 참석했다.

교수들은 ‘교육농단 저지하여 의평원을 지켜내자’, ‘교수들이 합심하여 국민건강 수호하자’, ‘불법증원 밀어붙인 책임자들 물러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정치권도 가세 = 이날 결의대회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의사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등도 참석했다.

박 위원장은 “반드시 이번 국감 등을 통해 의평원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막아내고 교육이 보다 정상화되고 질 높은 수준으로 담보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아무리 의사가 늘어도 의료 수준이 추락해 의료사고가 더 생기게 되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실력이 부족해도 의사 고시를 통과할 수 있게 되면 결국 가장 큰 손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의사 배출 비상 = 한편 지난달 치러진 의사 국가시험 실기에선 응시자가 지난해 10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24일 시행된 제89회 의사 국가시험 실기에는 347명만이 최종 응시했다. 지난해 응시자 수는 3212명이다.

이번 실기시험 인원은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며 의대생들이 단체로 국가시험을 거부했던 2020년 응시자(423명)보다 적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신규 의사 배출과 공보의 수급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의원은 “의사 배출이 늦어질수록 필수 의료 인력 부족뿐 아니라 의료 취약지에 배치할 공보의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어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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