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택가격 슈퍼사이클 시작되나
이코노미스트지 “인구유입, 도시매력, 인프라 확충한계 등 이유로 장기상승 추세 시작”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주택가격은 실질기준으로 6% 하락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복세를 보이며 금융위기 이전의 정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을 때 경제학자들은 부동산 폭락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피해 한적한 곳에 주택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부분적인 호황이 있었다.
그리고 2021년부터 전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서 집값 하락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실제로 실질 주택가격은 5.6% 하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향후 수년 동안 집값은 중력을 거침없이 거스르게 될 것”이라며 슈퍼사이클(장기상승 추세)의 시작을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1950년대만 해도 경제선진국 주택가격은 실질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주택건설업자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집을 지었다. 때문에 수요에 따라 가격이 크게 오르는 일은 없었다.
영국중앙은행 전 연구원들로 현재 임페리얼칼리지런던대학교 교수인 데이비드 케네스 마일스와 제임스 세프턴은 2017년 논문에서 ‘19세기와 20세기 초 주거 관련 인프라가 확충된 것도 주택가격 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했다. 교통 인프라가 개선돼 사람들이 직장에서 더 멀리 떨어져 살 수 있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유용한 토지의 양이 증가해 도심공간에 대한 경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5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수십년 동안 주택 슈퍼사이클이 진행됐다. 각국 정부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보조금 사업에 뛰어들었다. 20대와 30대의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으면서 주택수요가 증가했다. 또 도시화로 주거편의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이미 혼잡한 지역에서 주거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동시에 20세기 후반 토지이용 규제가 늘어나고 개발반대 운동이 등장했다. 인프라 구축이 어려워지면서 도시 확장성이 떨어졌다. 영국 런던이나 미국 뉴욕 등 한때 주택건설에 열을 올리던 대도시들이 반대로 돌아섰다. 경제선진국들 전역에서 인구 대비 주택 건설은 1960년대 정점을 찍은 뒤 현재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집값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지난 수년 동안 주택시장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낙관적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미국의 일반적인 30년 만기 모기지 이자율은 2021년 저점 대비 약 4%p 상승했다. 각종 연구논문에서 도출된 경험법칙에 따르면 명목 주택가격은 30~50%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고정금리 모기지 대출을 받아 금리인상으로부터 보호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모기지 이자율을 고정하는 미국에서는 가계의 소득 대비 모기지 이자 납부액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신규 주택 구매자들은 더 높은 비용을 내야 할 처지이지만 빠른 소득성장이 이러한 효과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주요 10개국(G10) 임금은 2019년보다 20% 상승했다.
물론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독일과 뉴질랜드 스웨덴의 실질 주택가격은 팬데믹 정점 이후 20% 넘게 하락했다. 하지만 대개의 나라에서는 집값이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고 이후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주택가격은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명목상으로 5% 상승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주택가격이 치솟고 있다. 주택시장이 취약한 다른 나라에서도 주택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탈리아가 국가부채 위기를 겪으면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로마의 주택가격은 명목 기준으로 30% 이상 하락했다. 이제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경제선진국 대부분 주택가격 상승
이코노미스트지는 “단기적으로 집값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금리하락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최고치에서 1.5%p 가까이 떨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정책 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유럽에서도 고정금리 대출자들이 곧 낮은 금리로 재융자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더 깊은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향후 수십년 동안 집값의 슈퍼사이클이 지속될 수 있는 3가지 요인을 짚었다. 첫번째는 인구통계다. 경제선진국들에 유입되는 외국 태생 인구가 연간 4%씩 증가하고 있다. 역대 가장 빠른 성장률이다. 이민자들은 거주할 곳이 필요하다. 이는 임대료와 주택가격을 모두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의 로사 산치스-과너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민자 비율이 1%p 상승하면 평균 주택가격이 3.3%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록적인 이주민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 캐나다부터 독일, 미국 등 정치권이 이민을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선진국들은 계속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고령화 인구를 수용해야 하는 이들 국가의 필요성이 국경을 강화하려는 욕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 올해 200만명을 넘은 순 이민자수가 내년부터 연간 150만명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125만명으로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집값 슈퍼사이클을 예고하는 두번째 요인은 도시와 관련이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삶에 매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원격근무의 증가는 이론적으로 사람들이 어디서든 살 수 있고, 재택근무가 가능해져 더 넓은 주택을 더 적은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는 달랐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대도시는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전체 기업의 37%가 대도시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2019년과 동일한 비율이다. 게다가 최근 수년 동안 전세계 전체 고용에서 대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일본 터키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수도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또 런던에 위치한 영국의 바와 펍의 점유율은 팬데믹 이전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모든 것이 이미 주택공급이 제한돼 있는 좁은 도심의 주거공간에 대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세번째 요인은 인프라의 확장 한계다. 많은 도시들에서 통근이 더욱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이 직장에서 더 먼 곳에 거주하는 게 어려워졌다. 영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도심 내 차량의 평균 이동속도가 5% 감소했다. 미국 텍사스A&M교통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도시들의 교통체증은 사상최고치에 육박했다.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통인프라를 대거 구축해야 하지만 많은 국가들은 재정상황 등의 이유로 이를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주택공급 탄력성 하락
일각에서는 ‘임비(Yimby·Yes in my backyard)’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형태의 주택이든 많이 짓자는 운동으로, 자신이 사는 지역에 특정시설이 건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의 반대 개념이다. 몇몇 국가에서는 주택건설을 장려하기 위해 토지 사용규칙을 변경하는 등 임비운동을 장려하고 있다. 2022년 초 뉴질랜드 주택건설 허가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집값 하락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임비운동의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노르웨이중앙은행 연구원 크누트 아 아스트베이트 등 3명의 경제학자가 쓴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주택공급 탄력성’(주택수요 증가에 따라 공급이 반응하는 정도)이 2000년대 이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건설경기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공급부족 문제는 규제가 엄격한 도시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인 산호세에서는 지난해 7000채의 주택만 건축허가를 받았다. 10년 전보다 큰폭으로 감소했다. 건축허가에 유연하다는 휴스턴과 마이애미에서도 주택건설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최대 자산클래스인 주거용 부동산은 앞으로 덩치를 더욱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