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곁가지와 성역 사이

2024-10-07 13:00:01 게재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 동남아 3국 순방을 시작했다. 싱가포르를 거쳐 이번주 후반에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참석까지 5박6일의 순방이다.

원전 건설 재개를 희망하는 필리핀과는 원전협력 방안을, 싱가포르와는 경제협력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라오스에선 아세안 정상들과 만나 관계 격상을 논의하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와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보나 흠 잡기 어려운 외교 일정이 이어진다.

문제는 항상 그랬듯 국내다. 윤 대통령의 순방 다음날인 7일부터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김건희 국감’을 벼른다. 김 여사 관련 사안이 다뤄지는 상임위원회가 5개에 이른다. 법사위에선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천개입 등 각종 의혹을 따지겠다며 100명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신청했다. 여기엔 김 여사와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도 포함된다. 그 외에도 교육위, 국토교통위, 외교통일위, 정무위 등에서도 야당은 김 여사 건을 다루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여당은 이에 대해 ‘민생국감’을 외치고 있지만 화제성도 주목도도 낮다.

결국 민주당과 야권이 의도한대로 윤석열정부 비판은 물론 김 여사에 대한 자극적인 문제제기가 대통령 순방 기간 내내 정치뉴스를 가득 채울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공들여온 다자외교가 꽃을 피울 이번 동남아 순방 성과는 국내 뉴스에 가려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이런 정치권 상황에 대해 “김 여사 문제가 대한민국 미래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중요하지도 않은 곁가지 아니냐”고 비판했다. 말하자면 덜 중요한 덜 본질적인 주제라는 거다.

이 참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야권과 인식차이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 야권에선 김 여사를 곁가지 따위로 보지 않는다. 핵심이자 본질,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당이 아니면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으로 본다. 국민권익위도 감사원도 검찰도 힘 있다는 국가기관들도 김 여사를 건드리지 못했으니 야당의 시간인 국감에서 꼭 다뤄야 할 주제라는 것이다. 그 밑에 깔린 정치적 계산도 물론 있겠지만 김 여사 특검에 대해 국민들의 찬성여론이 압도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명분 자체는 대중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실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대통령실은 언제까지 김 여사 문제를 ‘곁가지’로 치부하며 중요한 일이 아닌 척 넘어가려 할까. 만약 이 대통령실의 ‘곁가지론’을 야권이 들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곁가지를 여태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대통령실 아니냐고.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면 어째서 시원하게 털고 가지 않느냐고. 이 질문에 대통령실이 답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