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긴축예산과 대통령의 솔선수범
“너나 잘하세요”란 말이 있다. 2005년 7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이금자(이영애 분)의 명대사다. 13년 억울한 옥살이 뒤 출소한 금자에게 전도사(김병옥 분)가 착하게 살라며 두부를 주자 무표정한 얼굴로 뱉은 말이다. 그뒤 금자는 처절한 복수에 나선다.
이 말은 그때 시대상과 묘하게 맞아 떨어져 유행어가 됐다. 부패한 정치권력이나 기득권층을 향한 통쾌한 언어적 복수였던 셈이다. 또 다른 유행어 내로남불의 ‘2000년대식 표현’이기도 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긴축예산이다. 작년 56조원에 이어 올해 30조원대 세수결손이 예상되니 당연한 일이다. 세수결손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은 논외로 하자.
수입이 적으면 씀씀이를 줄이는 게 살림의 이치다. 가정이든 회사든 국가든 마찬가지다. 다만 씀씀이를 줄이면 고달프고 누군가는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자녀들 용돈을 깎으면서 가장이 유흥비나 펑펑 쓰고 다닌다면 집안이 조용하겠는가. 정부 재정은 더 그렇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암담하다. 윤석열 대통령 퇴임 뒤 쓸 사저 경호시설 예산이 전임정부의 2배인 139억원 책정됐다고 한다. 지난해 2월 독일과 덴마크 순방을 닷새 앞둔 윤 대통령은 석연찮은 이유로 돌연 행사를 연기했다. 외교적 결례도 큰 문제였지만 관련예산 수억~수십억원을 허공에 날렸다. 지난달 30일에는 순방 예산이 부족하다며 해외순방 프레스센터 예비비로 19억4000만원을 신청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예비비는 국회심의가 필요 없다.
내년 대통령 정상외교 예산으로 296억원을 편성했는데 올해보다 9.3% 급증한 금액이다. 대통령실 등 7대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예산도 2조1100억원으로 크게 늘려잡았다. 올해보다 570억원 늘었고 전체 정부부처의 85%를 차지했다.
반면 긴축예산 탓에 군장병 급식단가는 동결하고, 간식비는 줄이고, 특식은 폐지될 운명이다. 전세계 엠폭스(원숭이두창) 환자가 늘고 있는데 두창 백신 구매 예산은 72.7% 감액됐다. “너나 잘하세요”란 말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최저인 주요 이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윤석열정부가 꽤 오래된 것 같지만 겨우 임기 절반을 앞두고 있다. 지나간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편 네편’ 가리지 않고 ‘국민의 이익과 국민의 눈높이’에서 솔선수범하면 여론도 돌아설 수 있다.
“어떻게 아내를…” 이런 핑계도 사치다. 대통령이 제대로 못하면 결국 최종 피해자는 국민과 국익이기 때문이다. 오늘 ‘윤 대통령의 성공과 태도변환’이 절실한 진짜 이유다.
성홍식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