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는 유리지갑…주식 과세는 ‘폐기’, 가상자산 과세는 ‘연기’

2024-10-08 13:00:02 게재

“상속세 증여세 등 탈루 곳곳서 포착, 불공정 인식 커져”

“고소득 자영업자의 비용처리, 근로소득자 차별 대우”

근로자들은 소득을 숨길 수 없다. 투명한 유리지갑과 같다. 근로소득세를 ‘탈루’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고소득 개인사업자와 부동산 등 취득세, 증여세, 상속세 등에 대한 탈루는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 주식투자로 얻는 금융투자소득이나 가상자산 투자이익에 대한 과세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금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따라서 ‘공정과세’를 위해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 등 자산에 대한 과세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여세,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는 얘기도 제기된다.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은 “근로자는 유리지갑이라고 해서 세원이 모두 노출이 되는 데 반해 자영업자는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자영업자는 사업과 관련이 없는 소비들에 대해서도 비용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불공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세청 차장 출신의 임 의원이 2000만 직장인이 직장생활을 위해 구입한 의류비의 일부를 공제해 주자는 ‘직장인 의복 공제법’(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다. 그는 “개인사업자나 기업은 이익을 내기까지 소요된 각종 비용을 폭넓게 공제받지만 직장인은 소득을 내는 데 필요한 비용을 공제받기 어렵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차관출신의 모 인사는 “근로소득자는 탈루도 못하고 세금을 내는데 고소득 자영업자의 경우 그렇지 않고 자산에 대해서도 과세 정도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경향이 많다”면서 “실제로도 근로소득자 입장에서는 주변의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자신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을 확인하기 쉽기 때문에 과세에 대한 불신과 함께 불공정하다는 의식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탈루방법도 다양 … 신고 누락, 차명, 무단 폐업 = 올 국감에서도 ‘탈루’ 논란이 쏟아졌다. 국세청에서 나온 ‘민생침해 탈세 세무조사 실적’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적발된 민생침해 탈세는 총 1917건이었다. 이들은 소득 7조3318억원 중 2조6091억원만 소득 신고하고 4조7227억원을 탈루했다가 적발됐다. 민생침해 탈세는 불법 대부업자나 다단계 판매업자, 성인 게임장, 고액 입시학원 등 서민을 상대로 불·탈법적 사업을 벌여 이익을 얻고 소득을 숨겨 탈세하는 행위를 말한다.

2022년 귀속분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부과한 증여세액(탈루액)은 2051억원으로 전년대비 66.1% 늘었다.

또 지난해 기준 국세청이 관리 중인 누적 차명재산 건수는 3911건으로 전년(3827건) 대비 2.2% 늘었다. 차명재산은 계좌·주식·부동산 등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명의로 취득하는 것으로 이들 상당수는 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최근 5년간(2019년~2023년) 무단폐업 등으로 세금을 내지 않아 적발된 주유소가 370건이었고 탈루액은 721억8600만원이었다.

자산에 대한 과세에서도 ‘불공정’이 감지됐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 수가 45만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0.89%를 차지했다. 세부적으로는 거주용 부동산(30.0%), 현금 등 유동성 금융자산(13.3%), 빌딩·상가(11.0%), 거주용 외 주택(10.3%), 예·적금(9.9%), 주식·리츠·ETF(6.5%) 순이었다. 부동산 비중이 51.3%였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금융위가 조사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전체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76.1%였다.

고액자산가들은 부동산 자산의 전체규모는 크지만 자산 대비 비율은 절반 수준으로 전체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고액 자산가를 뺀 나머지 가계의 부동산 비중은 8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임 의원은 “대체로 우리나라 가계들의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으로 매우 높은 상황이지만 고액 자산가일수록 부동산보다는 주식 등 금융자산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고 실제 수익도 많이 내는 편”이라며 “하지만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여야가 합의한 금융투자세 과세 대상은 주식투자자 1400만명 중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귀속분 주식 배당소득 29조1838억원 중 상위 0.1%(1만7236명)가 49.1%(14조3358억원)를 가져갔다. 상위 1%로 확대하면, 전체 배당소득의 70.1%(20조4966억원)를 차지했고 상위 10%의 배당소득 점유율은 92.1%에 달했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안도걸 의원은 “주식 소유자 상위 0.1%가 전체 배당소득의 절반을 가져가고 있다”며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액 자산가들에 대한 과세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행 예금 이자엔 세금 붙이는데 = 주식, 리츠, ETF 등 금융자산 과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5년간 연 5000만원 이상 수익을 얻은 부분에 대해 과세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는 가상화폐 과세와 연결돼 있다. 2022년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연기방침에 여야가 합의한 데 이어 올해 정부는 아예 ‘폐지’ 카드를 꺼내 들고선 “국내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현행 주식 등 양도소득세 체계는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과세도 2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애초 소득법에서는 가상자산 양도와 대여로 발생한 소득에 대해 기타소득으로 보고 내년부터 세율 20%로 과세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시작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제도 시행상황을 고려해 가상자산 과세 시행 시기를 유예해야 한다고 했다.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와 빗썸이 최근 금융감독원을 통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에 제출한 ‘가상자산 보유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10억원이 넘는 가상자산 계좌를 가진 개인이 총 3759명에 달했다.

근로소득세뿐만 아니라 은행 예금 이자에 대해서도 과세하는 상황에서 주식과 가상자산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를 계속 미루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작지 않다.

또 상속세와 증여세의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하향조정하고 상속세 자녀공제 금액을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 늘리는 방안,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확대하고 특히 기회발전 특구 창업이나 이전기업에게는 한도 없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부자감세’로 보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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