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전력수급기본계획 되짚어 보기

2024-10-10 13:00:01 게재

전력수급계획은 전력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여기에 맞춰 수요관리와 함께 발전소와 송배전설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계획이다. 1961년 이래 한국전력이 수립해오다가 1991년부터는 전기사업법에 근거해 정부가 직접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21번의 전력수급계획이 수립되었으며 수시로 수정된 계획을 포함하면 40번이 넘는다.

전력수급계획은 1990년을 기점으로 수립방법이 크게 바뀐다. 여기에는 전력수급 불안과 발전소 입지난이 직접적인 단초가 됐다. 1980년 후반 경기활황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으로 발전소 부지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번졌다. 실제 1987년 72%에 이르던 설비예비율이 1991년 10%대 그리고 1995년도에는 6.4%까지 곤두박질쳤다.

40번 넘게 수립되고 수정된 전력수급계획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는 전력수급계획 수립의 틀을 확 바꾼다. 상황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계획수립 주기를 기존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계획의 연속성 유지와 원전과 유연탄 발전소 부지확보를 위해 계획기간을 기존 5년에서 15년으로 늘린다. 여기에 정부의 계획실행을 담보하기 위해 기존 내부 행정계획에서 법정계획으로 전환하고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장기전력수급계획심의위원회도 설치한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현시점에서 그 적절성에 대해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2년마다 계획을 바꾼다는 것은 부분적 보완을 의미한다. 물론 1995년과 2013년 차례 계획에서 LNG와 유연탄 발전소가 대규모로 반영된 적이 있으나 이는 절박한 전력수급위기 때문이었다. 2017년 이후부터는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듯이 2년마다 전력수급계획이 요동치고 있다. 원전 석탄 LNG 발전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오히려 전력사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수급 안정에 위협이 되는 모양새다. 한편 2년 주기 전력수급계획은 5년 주기의 여타 에너지계획과 기간, 목표 등이 어긋나면서 계획간 정합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2013년 이후 공청회, 국회보고, 전략환경영향 평가 등 계획수립 절차가 복잡해지고 기간이 길어지면서 급박한 상황변화가 있어도 계획을 탄력적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게 됐다. 실제 2020년 9차 계획을 만드는 데 무려 1년 10개월이 걸렸으며 2013년 이후 계획 변경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또한 15년으로 계획기간을 늘린 것은 원전 석탄과 같은 대형발전소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석탄발전을 더 이상 허가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이 확고하고, 원전도 예전처럼 대폭 늘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더욱이 앞으로는 발전소는 분산화 소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과 같은 15년 장기계획이 오히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발전소는 계획에 반영되어 일단 착공하면 중간에 공사를 중단하거나 변경하기 어렵고 따라서 계획기간이 길수록 건설기간이 긴 대형발전소가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계획 실행력이 과거와 달리 약화되어 있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계획의 성격이 실행계획인지 전망인지 모호하고 사업자가 계획을 이행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수요관리 목표는 번번히 빗나가고 발전소와 송전설비의 건설 지연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정치가 정부정책을 압도하면서 전력수급은 불안정해지고 전력수급계획에 대한 대외적 불신은 커지고 있다.

정치가 정책 압도하면서 전력수급계획에 대한 불신 커져

앞으로 인공지능 탄소중립과 함께 세계적 공급망 문제가 확산되면서 전력정책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수급안정은 물론 에너지안보 환경 안전 등 고차원 방정식처럼 복잡해질 것이다. 30여년 전 만들어진 전력수급기본계획 틀을 가지고 오늘날 안고 있는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세밀히 들여다보고 개선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용래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전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