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직원 587명 이메일 무단 열람
통신자유 침해·개인정보 유출 우려 … 허종식 의원 “검찰공화국 단면”
한국전력공사(한전) 감사실이 지난해 11~12월 두달간 직원 587명에 대해 본인 동의없이 이메일을 무단 열람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정보 유출로 헌법상 보장되는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 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공기관 감사계에서도 국민정서상 납득하기 힘든 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허종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인천 동구미추홀구갑)에 따르면 한전 감사실은 지난해 11월 착수한 ‘전사 연구관리실태’ 특정감사 중 전력연구원 소속 A연구원의 이메일 열람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3차례에 걸쳐 총 587명의 사내 이메일을 당사자 동의없이 무단 열람했다.
A연구원이 자문료를 과다하게 지급한 대상이 용역계약대상자로 선정된 정황을 확인한 후 용역계약 부적정 행위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해 용역계약 관련 직원(154명)과 연구원(432명)의 사내 이메일을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한전 감사실은 대상자에게 사전 고지할 경우 이메일 삭제 등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아 개인정보제공 동의 절차를 생략했다는 입장이다.
한전 감사실은 전력연구원 노조 측에서 고소·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2월 감사자문위원으로 위촉한 변호사에게 법률 검토를 의뢰했다. 또 같은 변호사에게 두 차례에 걸쳐 내부자료 유출 관련 수사의뢰와 입찰방해죄 성립 요건에 대한 자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가 임의로 직원의 이메일 또는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 내용을 열람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헌법상 보장되는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다.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형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나아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돼 손해배상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선고 2007노318’ 판결을 살펴보면 회사가 직원 이메일을 열람하는 경우 △정당한 기업의 목적과 필요성을 입증할 자료를 갖추고 △최소한도 범위 내에서 열람한다는 원칙 아래 △동의서를 받은 경우 열람이 가능하다. 이 판례대로라면 한전 감사실의 직원 이메일 무더기 열람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최소한의 범위가 아닌데다 동의서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공공기관 감사실 관계자는 “특정업무 수행자의 비위·불법행위가 명확해보일때 입증책임을 전제로 이메일 열람이 가능하다”면서도 “부적정 행위가 관행적으로 만연돼 있는 것으로 추정해 수백명의 통신내역을 무단 열람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한전 감사실처럼 사내 이메일을 대대적으로 열람한 경우는 전무후무한 사례”라며 “국민 정서와도 동떨어진 처사”라고 지적했다.
허종식 의원은 “직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이메일을 대대적으로 열람하는 것은 먼지털이식 감사의 전형이며, 마치 검찰공화국의 한 단면으로 비쳐진다”며 “감사의 제1목표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전 감사실은 2023년 3월 전영상 감사 취임 이후 올해 7월까지 1년 5개월 동안 86건의 자체감사를 진행해 958명에 대해 신분상 조치를 취하는 등 감사권 남용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재호 박준규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