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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사령부,‘격자형 안보구조’ 통합사령부 되나

2024-10-11 13:00:02 게재

윤석열정부에 들어와 한-유엔군사령부(UNC,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담이 개최되고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으로 들어오는 등 유엔사가 강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들은 ‘가짜 유엔사 해체’ 운동을 벌이고 있고, 북한은 유엔총회 등을 통해 ‘불법무법의 유령기구’라며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한-유엔사 회원국 회담에 대해 “냉전의 산물로 법적 근거가 없는 ‘유엔군’ 간판을 내걸고 회의를 여는 것은 한반도정세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비난했다.

유엔사의 역할은 당초 무력공격 격퇴와 한국방위였지만 정전협정 체결 이후 한국방위 역할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면서 정전체제 관리, 전시증원전력 제공의 두 가지로 정리됐다. 유엔사는 남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조사하고 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적대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유사시 일본 내 7곳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통해 전시증원군을 제공한다. 그런데 최근 유엔사의 역할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지역으로 확장되고 다국적 군사기구로 재편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전작권 전환에서 비롯된 유엔사 재활성화

유엔사의 첫째 임무는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정전관리를 담당하는 것이다. ‘정전협정’ 제9조와 제10조에는 △비무장지대 통행허가권,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에 대한 유엔사의 책임과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정전협정’ 전문에는 정전의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유엔사의 월권 문제가 제기되었다.

유엔사가 경의선 철도연결을 위한 남북공동조사, 원형보존된 비무장지대 내의 감시초소(GP)를 취재하려던 강원도민일보의 군사분계선(MDL) 통행을 승인하지 않았다. 북한에 보내는 의약품 타미플루 운반트럭에 대해 유엔제재 위반 가능성을 들어 통행을 불허했다. 유엔사의 책임과 권한 행사는 ‘군사적 성질’에만 국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엔사 측이 정전관리의 취지를 넘어 비군사 부문의 통행까지 통제한 것이다.

유엔사의 둘째 임무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했을 때 일본열도 안의 7개 후방기지를 통해 병력과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미합의의사록’에 따라 유엔사령관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다가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그 권한이 연합사령관에게 ‘이양’되었다. 그 뒤 연합사와 유엔사는 주도-지원(supported-supporting) 지휘관계를 유지해 왔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추진되면서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이 2014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유엔사 부사령관을 캐나다·영국·호주 장성 중에서 선임하고, 주한미군이 겸직하던 유엔사 참모장의 별도 보직화, 유엔사 참모요원의 확대 편성, 유엔사 직위 99개 중 20개를 한국군이 맡는 방안 등이 추진되었다. 마침내 2018년 10월 한미 안보협의회회의(SCM)는 ‘한국합참-유엔사-한미연합사 간 관계 관련 약정(TOR-R)’을 승인함으로써 유엔사 재활성화는 일단락됐다.

한미는 2014년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합의하고, 2018년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 지침’을 통해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한미연합사를 존치하고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사 체제로 가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사령관이 데프콘 5, 4에서 유엔군사령관 명의로 정전관리를 주도하고, 데프콘 3 이상에선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전력제공자 임무를 맡고 미래연합사 부사령관 자격으로 연합사령관(한국군 4성장군)의 작전통제를 받아 정규전을 수행하게 된다.

미국의 전략변화와 유엔사 강화

중국의 굴기가 본격화되고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되면서 동아시아 안보질서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 안보구조는 한·미, 미·일, 미·호, 미·필리핀, 미·대만 등 양자 방위조약으로 연결된 차축-바큇살(hub & spokes) 동맹체계였다. 미국은 전략공간을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 확대하는 한편 쿼드(미·일·호·인), 오커스(미·영·호), 한·미·일, 미·일·필 3국 안보협의체와 같은 소다자안보기구를 결합한 ‘격자형(1attice-like) 전략구조’와 같은 새로운 동맹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당초 미국은 전작권 전환에 대비해 유엔사 재활성화를 시작했지만 역내 안보질서의 변동에 따라 유엔사의 타깃을 북한 위협에서 중국 위협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차축-바큇살 동맹체계에서는 양자 방위조약과 그에 따른 연합훈련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격자형 전략구조에서는 여러 소다자안보기구를 연결하는 통합군사기구가 필요하다. 지금 미국은 중국 굴기에 대응한 격자형 전략구조의 통합군사기구의 필요성 차원에서 유엔사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미국은 유엔사 강화 차원에서 유엔사 전력제공국가를 확대하고 유엔사 주도로 다국적 연합훈련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이 된 데 이어 추가로 회원국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작년 10월 한미 외에 4개 유엔사 회원국들이 참가해 한반도 주변해역에서 첫 연합 기뢰전 훈련을 실시했고, 금년 3월에 실시된 ‘2024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에도 12개 유엔사 회원국이 참가하였다. 아직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유엔사의 연합훈련이 실시되고 있지만, 장차 인·태 지역으로 훈련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가입은 안돼

그렇다면 유엔사의 다국적 통합사령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유엔사는 1978년 한미연합사에 전작권을 이양한 후 줄곧 유사시 지원사령부 역할을 자임해 왔다. 하지만 유엔사가 재활성화되고 강화되면서 끊임없이 작전사령부로 전환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만약 정부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한국이 유엔사 회원국으로 들어갈 경우 전작권 전환은 물 건너가게 된다.

설사 전작권이 전환되어 한국군 4성장군이 미래연합사령관을 맡더라도 실질적인 군사작전은 유엔사가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나 중·러 등 핵보유국이 개입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한국군 주도의 미래연합사로는 대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다국적 전력제공자인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통제가 위임될 가능성이 있고, 유엔사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엔사가 작전사령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유엔사 전력제공국 참여 가능성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미 일본 자위대의 통합작전사령부에 주일미군이 협조하는 주일미군 통합군사령부를 창설해 미·일 군사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등 격자형 전략구조의 핵심국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유엔사 회원국에 포함시키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윤석열정부가 일본의 유엔사 전력제공국 참가를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주한미군이 발간한 ‘2019 주한미군 다이제스트’에 ‘유엔군사령부가 유사시 일본과 전력지원을 협력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던 적이 있다. 이는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통한 협력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로 밝혀졌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

일본이 제공하는 유엔사 후방기지는 우리 안보에 필요하다. 그렇지만 일본자위대가 유엔사 전력제공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일 안보협력이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일본을 유엔사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단견이다. 역사적 경험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일본정부의 투 코리아 정책 등을 고려할 때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합법화해 주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전 주 오사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