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틀렸다, 객관적 현실이라 믿는 정보의 환상
반쪽 정보만 얻을수록 확신에 차서 결정 내려
나의 관점만이 객관적이라는 ‘순진한 실재론’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해마다 정책 국감을 외치지만, 어김없이 정쟁만 가득한 정치 국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임위 곳곳에서 여야의 설전과 충돌이 이어지고 동일한 자료인데도 내세우는 주장이나 해석이 180도 다른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왜 그럴까. 동일한 사실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은 비단 국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야 힘겨루기, 대선, 탄핵 등 복잡한 정치 셈법을 거둬내면 의외로 본질은 비슷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정치 국감에 대한 비판이나, 거창하게 정치공학적인 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 제시는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틀렸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한 질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14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실린 논문 ‘정보 적절성의 환상’에 따르면, 사람들은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에 대한 자신의 이해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에는 △헌터 겔바흐 미국 존스홉킨스 교육대학교 교수 △칼리 D. 로빈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교수 △앵거스 플레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 연구진은 온라인 설문 플랫폼인 프로리픽(Prolific)을 통해 미국 내 참가자 1501명을 모았다. 주의력 검사 조사를 한 뒤 1261명 표본을 추렸다.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39.8세였다. 중간 교육 수준은 대학 3년이었다. 남성 참가자의 71%는 백인이었다. 정치적 성향은 △진보주의자 651명 △보수주의자 356명 △중도주의자 254명 등이다.
연구진은 1261명을 3그룹으로 나눠 지하수가 고갈되는 지역에 있는 학교가 수자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읽도록 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다른 위험이 있지만, 물이 충분한 다른 학교와 통합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글을 제공했다. 이 글에는 다른 학교와의 통합의 이점을 설명하는 세 가지 주장과 중립적인 정보가 포함됐다.
두 번째 그룹의 경우 미래에 더 많은 비가 내리길 바라며 현재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담은 이야기를 읽었다. 현 상태를 유지하는 이점에 대한 세 가지 주장과 중립적인 정보가 제시됐다. 세 번째 그룹에게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주장이 모두 들어간 글을 제공했다.
역설적이게도 한쪽의 이야기만 담은 글을 읽은 그룹들이 자신들이 내린 결론에 더 큰 자신감을 표현했다.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만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세 번째 그룹보다 학교가 합병돼야 하는지 아니면 분리돼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에 더 자신감을 내비쳤다. 나아가 이들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들이 읽은 글의 권장 사항을 따를 걸로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편향된 글을 읽은 그룹에게 다른 주장을 담은 정보를 제공했을 때 마음을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본인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여기는 걸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엄청난 양극화와 모호한 정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겸손함과 그에 상응하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관점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와스모어대학의 배리 슈워츠 심리학자는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종종 잘못된 믿음에 자신감을 갖고 있더라도 적어도 잠재적으로 변화에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사회심리학의 ‘순진한 실재론(Naive Realism)’ 개념을 보완하는 의미도 있다. 1990년대 프린스턴대학의 에밀리 프로닌과 스탠퍼드 대학의 리 로스에 의해 등장했다.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갈등 해결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한다.
순진한 실재론은 개인이 자신의 주관적인 현실 인식을 객관적 진실로 여기고 다른 합리적인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볼 걸로 믿는 심리적 경향이다. 만약 타인의 견해가 자신과 다를 경우 상대방이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며 △편견이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