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공격적 지경학 시대

2024-10-16 13:00:02 게재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최종목표는 경제적 ‘디커플링(분리)’을 통해 중국의 도전을 제압하고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의 초기 대응은 동등한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외국인 투자규제를 대등한 수준으로 법제화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첨단기술산업 진흥 정책을 수립·실행하는 등 방어적 수준에 머물렀다. 지정학적 대결이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인 것과 달리 지경학적 무역전쟁은 양자가 모두 손해를 보는 마이너스-마이너스 게임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첨단기술’의 중국 유출을 차단하는 기술전쟁으로 전환했다. 한편 중국과 경제적 의존도가 미국보다 높은 유럽연합은 첨단기술보다 더 좁은 개념인 ‘군사용 이중용도 기술을 비롯한 고도민감기술’에 한정해 대중국 거래를 제한하는 소극적 ‘디리스킹(위험제거)’전략을 채택했다. 미국도 유럽연합과의 연합전선 구축의 필요 상 반도체 등 전략적 첨단기술(작은 마당)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높은 울타리)하는 미국식 디리스킹, 즉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전략으로 한발 물러섰다.

미 대선 과열로 대중국 강경책 수위 높아져

최근 미중 대립의 강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과열로 대중국 강경책의 수위가 높아졌다. 특히 주요 경쟁의 장인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는 ‘작은 마당’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트럼프 진영은 중국을 넘어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 지경학 전략을 공언하고 있다.

중국도 자국 우위의 경제적 수단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빈도를 높이고 있다. 리튬 흑연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외교적 강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범용 반도체 등 중하급 기술 제품의 과잉생산을 통한 저가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점유율을 급격히 높여가고 있다.

이미 세계시장 지배력을 장악한 태양광 패널과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는 매우 위협적인 공격적 지경학 수단이다. 유럽연합도 방어적 디리스킹 전략의 한계를 인식하고 공격적 지경학 전략으로의 전환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경제안보 기준을 도입하고, 공격적 지경학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쟁력 우위의 기술 또는 자원의 발굴 및 개발에 역량을 초집중하고 있다.

바야흐로 공격적 지경학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도 기존 편승 전략의 한계를 인식하고 독자적인 공격적 지경학 전략, 즉 ‘한국형 지경학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먼저 글로벌 기술·산업·공급망 정보시스템을 정밀하게 구축하고, 특정 기술 및 자원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식별하는 능력을 고도화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경쟁 우위의 기술 및 산업을 선택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상을 갖출 수 있도록 육성하고 공격 및 방어 수단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역량이 부족한 분야는 유럽연합 등 유사한 입장의 국가와 연대를 통해 보강해야 한다.

국익 최우선하는 실용주의적 전환 요구돼

특정 국가와의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방어적 전략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히려 핵무기와 유사한 ‘상호확증경제파괴’를 초래할 정도의 긴밀한 상호경제적 의존이 평화를 보장하고 상호 발전을 촉진하는 측면도 있다.

디지털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상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국책과제다. 한국형 지경학 전략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근원적 힘은 글로벌 중추국가를 향한 국제정치적 야망이다. 현재의 가치 중심의 글로벌 중추국가론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공격적 지경학의 시대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주의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운명은 도전하는 자의 편이다.

임종식 지경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