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공방에 길 끊고, 총 쏘고 ‘한반도 위험천만’
북, 경의·동해선 도로 폭파 … 남, 중기관총 대응사격
미 “북, 충돌 키우는 행동” … 러 “남한의 도발 행위”
평양 상공에 남측 무인기가 여러 차례 침범했다는 북한 주장에서 비롯된 이른바 ‘무인기 공방’이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5일 북한은 남북화해의 상징인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고, 남한은 대응의 의미를 담아 유탄발사기와 중기관총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와 영상을 통해 “북한군이 오늘 정오께 경의선 및 동해선 일대에서 연결도로 차단 목적으로 추정되는 폭파행위를 자행했으며, 현재는 중장비를 투입해 추가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차단한 북한이 이번에는 남북간 육로까지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4년여 전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철로와 도로까지 완전히 끊으면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남북관계를 교전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천명한 뒤 올초에는 통일과 관련된 흔적은 모두 지우라고 지시하면서 진행돼 온 ‘통일지우기’의 연장선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의 도로 폭파에 대해 남측도 격하게 반응했다. 우리 군은 북한에 행동중단을 요구하는 경고 방송을 한 뒤 경의선과 동해선 부근에서 K6 중기관총과 K4 고속유탄발사기를 각 수십발 대응발사했다. 사격은 군사분계선(MDL) 이남 1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사전에 표적지를 설치한 뒤 진행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이번 도로폭파가 군사분계선(MDL) 10미터 앞에서 이뤄져 MDL 이남까지 영향을 미치는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사격을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북한의 폭파행위가 남한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되레 긴장과 충돌 가능성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번 무인기 사태에 대한 북한 주장에 대해 남한의 군사안보 책임자들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재발방지책을 검토하기는커녕 북한의 도발시 정권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대화는 실종되고 극한 감정대결만 벌이고 있는 남북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라도 발생할 경우 이는 곧바로 한반도 전체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불리던 9.19남북군사합의까지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다. 작은 불씨만으로도 거대한 화마가 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국면인데도 남북은 긴장을 낮추기 위한 노력보다 기싸움과 감정적 대결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미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도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도로폭파에 대해 “우리는 긴장을 완화할 것과 무력충돌 위험을 키우는 어떤 행동도 중단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면서 “동맹인 한국과 긴밀히 조율하며 북한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러 대변인은 이어 무인기 관련한 북측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는 않은 채 “우리는 그들(북한)이 긴장을 높이는 조처들을 계속 취하는 것을 보아왔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15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한국(남한)이 한 행동들은 한반도 안정을 해치고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도발 행위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는 위험한 전개이며, 이제 멈춰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또 전날에는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이번 무인기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주권침해이자 내정간섭”이라며 북한 주장에 힘을 실었다.
안토니우 쿠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15일 “한반도 상항을 주시하고 있다”며 “북한과 다른 당사국 간의 모든 관련 소통 채널을 가능한 한 빨리 복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고 VOA(미국의소리)가 전했다.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북 모두 한치의 양보나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한반도 긴장과 대결국면은 갈수록 높아질 조짐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