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국민연금 판단에 승부 갈릴 듯
6조원대 쩐의 전쟁에 이은 표 대결로 '2차전' 돌입
국민연금 예의주시, 3월 주총서 최 회장 손 들어줘
“기술력 없는 헤지펀드의 경영권 매수 부정적 의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확실한 승자 없이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쩐(錢)의 전쟁에서 표 대결로 2차전에 돌입했다. 더 치열해진 경영권 분쟁에서 현재 지분 7.83%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판단에 승부가 갈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국민연금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추후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주목된다.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측 안건에 찬성을 해 왔다. 특히 2년 전 장형진 영풍 고문을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는 반대표를 던졌고, 고려아연과 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난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도 국민연금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기존 보유 자사주 2.4%는 묶인 지분 =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4일 마감된 MBK·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총 110만5163주(5.34%)가 응하면서 MBK·영풍 연합의 지분은 총 38.47%로 늘어났다.
우호세력를 포함한 최 회장 측의 지분은 34.05%다. 고려아연 보유 자사주(2.39%)와 매입 예정 자사주(2.85%), 국민연금 지분(7.83%)을 제외하면 기존 유통 물량은 20% 안팎이었는데, 전날 영풍·MBK 연합으로 5.34%가 유입되면서 자사주 청약 가능 물량은 15% 안팎으로 줄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후 전량 소각 방침을 세운 상태여서 이후 기존 주식의 지분 비율은 모두 올라가게 된다.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10%를 사들여 소각하는 경우 영풍·MBK 연합의 지분은 42.74%, 최 회장 측은 베인캐피털 우호 지분까지 합해 40.27%로 각각 높아진다. 하지만 어느 쪽도 과반이 넘지 않아 절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려아연이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 2.4%를 지분 스왑 등을 통해 의결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안은 내년 2월에나 가능하다. 고려아연은 올해 5월과 8월, 두 차례 한국투자증권과 자사주 신탁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의 ‘기업공시 실무안내’에 따르면 복수의 자사주 신탁계약이 있는 경우에는 가장 최근 체결일을 기준으로 6개월이 지나야 신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 내년 2월이 돼야 계약을 해지해 처분할 수 있다. 때문에 주주명부가 확정되는 연말까지는 상호 교환이나 제3자 매각 등을 통해 의결권을 살릴 수 없어 사실상 ‘묶인 지분’이다.
◆자사주 소각 뒤 국민연금 지분 8.7%로 ↑ =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와 자사주 소각 후 국민연금의 지분은 현재 7.83%에서 8.7%로 커진다. 그만큼 국민연금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40% 초반대 지분을 보유하고 표 대결을 벌여야 하는 양측 사이에서 국민연금의 지분 8.7%는 절대적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가운데 고려아연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020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최근 5년간 고려아연 정기 주총에 참석해 총 53건의 의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92.5%(49건)가 ‘찬성’으로, 고려아연 경영진 방침에 대부분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의안은 4건으로 이 중에는 현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장형진 영풍 고문에 대한 이사 선임안도 포함됐다.
지난 2022년 3월 23일 열린 정기 주총에는 국민연금은 “장형진 후보는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의무 수행이 어려운 자에 해당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내부 기준에 따른 결정이었다. 장 고문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을 수면 위로 드러낸 올해 3월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은 모두 고려아연 경영진 편에 섰다.
증권가에서는 “지난 3월 국민연금이 고려아연의 정기 주주총회 당시 최 회장 등 현 경영진에 힘을 실어준 만큼 이번에 사모펀드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편 고려아연과 관련한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에 맡기는데,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경우는 금융당국까지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라 자체 판단하기 곤란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 한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서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수책위에서 먼저 제안하지는 않겠지만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기도 어려운 내용이라 수책위에서 결정하게 될 것 같다”며 “수책위원들의 경우 기술력이 없는 헤지펀드가 경영권을 가지는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