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선한 독과점은 없다

2024-10-17 13:00:02 게재

6년 전 일이다. 2019년 12월 13일, 국내 스타트업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 소식이 연말 분위기를 달궜다. 배달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 독일계 글로벌 배달서비스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된 것이다. M&A 규모는 4조8000억원.

정부와 벤처업계, 벤처캐피탈업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우아한형제들은 국내 유니콘기업의 성공사례, 창업주 김봉주 대표는 기업가정신의 상징으로 칭송됐다. “유니콘 신화를 만들어 창업분위기 확산에 기여했다”(벤처업계), “한 단계 도약을 위한 하나의 모험적 투자로 해석된다”(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은 성공사례”(벤처캐피탈협회).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독일기업 배달의민족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 송파구 우아한형제들 본사 앞은 소상공인들의 집회로 북새통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배달의민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방적 수수료 인상’ 등 갑질횡포에 대한 지적이다. 국내 배달앱 시장점유율 60%가 넘는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7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과 5062억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실적에도 지난 8월 주문수수료를 6.8%에서 9.8%로 인상했다.

소상공인에게 지금은 혹독한 겨울이다. ‘100만 폐업 시대’를 보내고 있다. 배달의민족 수수료 인상이 납득이 안되는 이유다.

다시 6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배달의민족 매각 당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소상공인은 물론 벤처업계 전문가 일각에서는 ‘독과점 폐해’를 걱정했다. “독점은 소상공인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지고 배달노동자들 역시 더 값싸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내몰릴 수 있다”(소상공인연합회), “국내시장을 외국기업에 넘기고 국내외 투자자들만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부정적 의견도 상당하다”(제조벤처 창업자).

이런 우려에 대해 당시 박 장관과 우아한형제들은 “수수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중기부는 2021년 배달의민족을 ‘자발적으로 상생협력하는 기업’(자상한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독일기업 배달의민족은 독과점을 무기로 국내 소상공인의 생존은 무시한 채 이익창출에만 몰두했다. “배달의민족이 독일의민족이 되어 대한민국 소상공인을 다 죽이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티메프’ 사태도 비슷하다. 오로지 외형 확장만을 위해 수많은 이들을 희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들을 속였다. 그것도 계획적으로.

14일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 제7차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 등 주요쟁점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정부는 여전히 선한 독과점을 기대하는지 궁금하다.

김형수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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