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통화긴축 3년 종료

기준금리 내리자 터져 나온 ‘한은 책임론’

2024-10-17 13:00:02 게재

실책, 긴축에도 주담대 급증 못막아 금융불안정 자초

실기, 완화로 전환했지만 내수 촉진 실효성 크지 않아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을 완화적 방향으로 전환했다. 장기간에 걸친 고금리와 고물가로 실물경기 침체와 금융상황 불안정속에 한은 통화 및 금융정책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최근 국정감사를 계기로 제기된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기존 연 3.50%에서 3.25%로 인하했다.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기존 0.50%에서 0.75%로 인상하기 시작한 이후 3년 2개월 만에 인하로 전환했다. 여전히 중립금리 상단을 웃돌아 금리수준은 긴축적이지만 방향을 완화로 전환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제기되는 책임은 크게 ‘실책론’과 ‘실기론’이다. 통화정책의 큰 방향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실패라고 할 수 없지만, 세부 운용과정에서 일부 실책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기준금리 인하 타이밍이 늦어져 완화정책의 전환에 따른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실기론이 더해졌다.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은에 대한 국감에서 기재부 2차관을 지낸 민주당 안도걸 의원은 “정부가 앞장서 주택경기를 부양할 때 한은이 강력히 견제했어야 하는데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며 “정부와 한은의 뒤틀린 정책조합이 금리인하 효과를 무려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의 지적은 정부가 지난해 1월 초 부동산 관련 규제를 풀고, 이후 각종 정책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집값을 부양하는 과정에서 한은이 적절한 견제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한은이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3.50%로 인상한 이후 역대 최장기간인 1년 9개월 동안 고금리를 유지했지만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는 증가세를 이어왔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할 때 은행을 비롯한 예금취급기관의 주담대 잔액은 715조5000억원이었다. 올해 8월 기준 818조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장기간 긴축적 통화정책을 폈지만 14.4% 증가했다. 가계대출 잔액도 2021년 1분기 1668조8000억원에서 올해 2분기 1780조원으로 6.7% 증가했다. 가계대출 잔액은 대부분 주담대 증가분에서 나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2022년 하반기 집값이 급락하고 부동산PF 위기가 지속되자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정책자금을 50조원 이상 풀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한은이 기재부장관과 금융당국 수장이 참여하는 F4 회의에서 적절한 견제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은 내부에서는 집값 불안과 주담대 급증에 따른 금융불안정성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한은 금융통화위 회의록 등에 따르면, 통화정책 운용에서 물가 못지않게 주담대를 비롯한 가계부채에 대한 지적이 빠짐없이 제기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가져가는 결정을 할 때마다 이른바 ‘영끌’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실책론은 실기론으로 이어진다. 긴축적 통화정책에 따른 고금리로 내수가 부진한 데 정작 중앙은행은 과도한 부채에 따른 금융불안정으로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정부는 국가부채 급증을 이유로 건전 재정을 강조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적절한 재정정책을 펴지 못했다. 내수가 어려운 때 재정과 통화정책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부터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중앙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미국 연준(Fed)과 독자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때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의원은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4개월 뒤에 나온 실패작”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도 “내수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고금리 장기화로 소비와 투자가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용 총재도 이번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었다는 점을 일부 인정했다. 그는 “7월 금통위 때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했지만 과도한 가계부채 문제가 걸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총재는 다만 “(기준금리 인하가) 실기했는지 여부는 내수에 방점이 있는지 금융안정에 있는지 고려하면서 평가해야 하고, 당연히 금융안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1년 정도 지나서 경기상황과 금융안정성 등을 보고 전반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금리 장기화는 자영업자 등 취약대출자의 고통을 가져온 데 반해, 은행권에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올해 2분기 말 기준 10.15%로 1분기(10.21%)에 이어 두분기 연속 10%대 수준을 보였다. 이는 전체 자영업자 평균 연체율(1.56%)에 비해 7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반대로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권 이자이익은 29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9조4000억원)를 넘어서 또 역대 최고 수준을 갈아치웠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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