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실혼 배우자, 유족연금 수급자 해당”

2024-10-17 13:00:01 게재

“법률혼 배우자와 사실상 이혼상태”

사실혼 배우자도 ‘유족연금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인이 생전에 사실혼 배우자와 부부공동생활을 한 반면 법률혼 배우자와 사실상 이혼 상태였기 때문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진폐유족연금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2년 사실혼 관계에 있던 진폐장애 배우자가 사망하자 공단에 진폐유족연금과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2022년 8월 A씨에게 고인의 사망 당시까지 법률혼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는 이유로 ‘부지급 결정’을 했다. 고인은 2006년과 2014년 두 번에 걸쳐 진폐장애등급 3급 및 13급 판정을 받아 진폐보상연금을 지급받던 중 2022년 6월 사망했는데, 1967년 혼인신고 한 후 3자녀를 둔 B씨와 법률혼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A씨는 이에 불복한 소송에서 “고인이 B씨와 별거를 시작한 2002년부터 교제하다가 2012년 8월부터 동거했다”며 “자신의 주민등록표에 ‘고인의 동거인’(2013년)으로 또 ‘고인의 배우자’(2014년)로 전입하고, 세대주를 자신으로 변경하면서 고인을 ‘자신의 동거인’(2014년)으로 신고하는 등 고인의 사망시까지 함께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사망 직전인 2022년 병원에 20일간 입원했을 때 고인의 보호자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B씨와 그 자녀들은 공단의 소송고지 신청을 받고도 이 소송에 참가해 혼인관계가 유지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지 않았다. 고인과 B씨 사이에는 형식상의 법률혼 외에는 혼인의 실체와 혼인관계 유지 의사가 사라져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자 법원은 “A씨가 2012년부터 고인과 부부공동생활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고인이 법률혼의 B씨와 합의이혼 또는 재판상 이혼 절차만 거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이혼 상태에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B씨는 고인과 별거를 시작한 뒤 고인과 동거하거나 생계를 같이 한 사실이 없다”며 “고인의 생전에 연락을 주고받거나 교류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고인은 진폐보상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한 이후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A씨 계좌로 송금하는 등 꾸준히 금전거래를 했다”며 “A씨는 고인을 보험수익자로 지정해 손해보험에 가입하고, 주택을 매수해 고인과 함께 거주하다가 고인에게 증여하는 등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고인과 A씨는 비록 중혼적 사실혼 관계지만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진폐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유족인 ‘배우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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