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파병’에 미국·나토 신중한 태도
증거 잇따라도 “확인 불가”
젤렌스키 강경대응과 거리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지원을 위해 전투병력을 파병했다는 국가정보원의 지난 18일(한국시간) 발표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를 통해 한글 설문지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설문지에는 한글로 ‘모자 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또 ‘러시아씩(식) 모자 크기’, ‘모자 둘레’, ‘군인의 가슴둘레 간격’, ‘조선씩(식) 크기’ 등의 글자가 쓰인 표도 담겼다.
전날인 18일 센터는 러시아 극동 연해주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에서 북한군인들이 러시아군 장비를 지급받는 영상을 입수했다며 이를 소셜미디어 엑스(X) 계정에 공개했다. 27초 분량의 영상 속에는 “넘어가지 말거라”“, “나오라 야” 등 북한 억양 음성이 들렸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전쟁을 더 장기화하는 등 파장이 큰 사안이지만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해온 미국과 서방의 반응은 현재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영상 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군인들을 보내고 있다는 위성·영상 증거가 충분하다면서 “우리는 이것과 관련해 우리의 파트너들이 더 정상적이고 솔직하며 강력하게 대응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지원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에 다른 국가의 사실상 참전”이라면서 “만약 세계가 지금 침묵하고, 우리가 이란의 샤헤드 드론을 방어해야 하는 것처럼 최전방에서 북한 군인과 교전해야 한다면 세계 누구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전쟁을 장기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영국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 등 서방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9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국방장관 회의 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관련 질문에 “만약 사실이라면 우려스럽다”면서도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18일 관련 질문에 “북한군의 전쟁 관여 여부에 관한 현재까지 우리의 공식 입장은 ‘확인 불가’”라고 했다.
다음달 5일 대선을 앞두고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바라지 않는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반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파병과 참전을 공식화하면 미국과 나토도 대응해야 한다. 유럽 일부 회원국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다시 제기될 수 있어 부담이다. 나토가 러시아와 직접 전쟁을 치르자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연장도 또다른 부담이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