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 제고’ 밸류업 필수 요건인데…회계감독조직 위상 낮고 ‘기형적 구조’
금감원 선임국장급이 회계부서 총괄하며 전결권 행사
임원→선임국장 ‘위상 추락’ … 국회, 법률 개정 시급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으로 대대적인 회계제도 개혁이 단행됐다.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일정기간 기업의 외부감사인을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하는 등 일종의 충격 요법까지 도입·시행됐다.
정부가 자본시장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정책도 회계투명성이 필수 요건으로 전제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하지만 회계투명성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회계감독조직의 위상은 오히려 추락했다.
금융감독원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지위는 그동안 임원(부원장보)이었지만 감사원 지적에 따라 지난해말 선임국장급으로 낮아졌다.
금융업권별 감독기구들이 통합돼 만들어진 금감원이 출범하기 전 회계감독은 증권감독원에서 맡고 있었다. 당시 증권감독원 회계감독 임원은 2명(부원장급, 부원장보급)으로, 이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업무가 분리되면서 각각 1명씩 해당조직에서 임원을 맡게 됐다. 금감원이 내규를 통해 회계전문심의위원을 부원장보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무위 검토보고서 “회계전문 부원장보로 격상 필요” = 국회에는 금감원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지위를 현재 선임국장급에서 부원장보로 격상하는 내용의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21일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내달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개정안을 회부해 논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수를 9명 이내에서 10명 이내로 증원하고, 부원장보 중 1인을 회계전문심의위원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금융감독원 구성원은 ‘집행간부 등’과 ‘직원’으로 구분되며, ‘집행간부 등’은 이 법에 따라 원장 1명, 부원장 4명 이내, 부원장보 9명 이내, 감사 1명 등 총 15명 이내로 규정돼 있다.
금감원은 출범 당시부터 전문심의위원을 부원장보급으로 운영했으며 2019년까지는 부원장보를 정원보다 1명 적은 8명만 임명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 직제개편을 통해 금융소비자보호처 소속으로 부원장보 1개 직위를 신설, 부원장보는 9명이 됐다.
지난해 감사원은 금감원이 전문심의위원을 집행간부 등으로 규정·운영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금융위원회법상 집행간부 등 정원(15인)을 초과(16인)했다며 조치를 요구했다. 금감원은 결국 전문심의위원을 집행간부 등에서 제외하고 직원 직위 중 회계부문을 통할하는 전문심의위원직을 신설했고 권한과 보수, 처우 수준도 하향 조정했다.
선임국장급 전문심의위원이 회계부서의 여러 국장들을 지위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문심의위원은 각 법률에 따라 감리위원회, 회계제도심의위원회, 회계자격제도 심의위원회, 공인회계사 윤리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다.
국회 정무위 최병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금감원 부원장보가 법률상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을 하고 있는 사례(자본시장심의위원회 당연직 위원)에 비춰 볼 때 금융 관계 법률에서 전문심의위원을 부원장보로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회계감독기구의 독자성을 보장하거나 별도의 독립기관을 설립하는 주요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회계감독기구가 별도로 독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총괄적인 회계전문가의 지위가 낮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임원 정원을 확대해 전문심의위원을 회계전문 부원장보로 격상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회계기본법 추진, 회계감독기구 설립 목소리 커져 = 검토보고서에서 지적한대로 우리나라는 회계감독조직이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산하에 4개부서(회계감독국, 회계감리 1·2국, 감사인감리실)가 전부이며 선임국장급이 총괄하는 기형적 구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회계감독조직이 금감원 산하에 있지만 다른 조직과 시너지는 내는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별도의 회계감독기구인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를 두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PCAOB를 감독하는 구조다. 우리나라는 정부조직인 금융위원회 산하에 회계제도팀이 있고 금감원 회계감독부서들이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EC와 PCAOB에 등록된 회계·공시 부서 인원은 2020년 기준 1254명으로 200명 안팎인 우리나라와 차이가 크다. 회계감독당국의 예산은 미국 5000억원이 넘지만 우리나라는 3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독자적인 회계감독기구 등을 포함한 회계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회계학회에 의뢰한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면 12월 2일 중간발표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회계학회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 이후 회계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 2016년 공청회를 열고 “현행 회계감독 조직과 인력으로는 상장기업의 회계 의혹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대응하기 어렵다”며 독립적인 회계감독기구 설치 방안을 제시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