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마을 전체가 ‘치유의 숲’으로 탈바꿈
용산구 ‘마음건강 도시’ 선포식
구청이 주치의, 이웃은 마음지기
“폭력을 피해 동생들 손잡고 집밖으로 도망 다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 알게 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일 마치고 갔을 때 신발이 몇켤레 남지 않은 걸 보면 가슴이 아프죠.” “한개만 더 하면 되는데 동생들이 다 부셔요.”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맞벌이 엄마, 일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정폭력의 기억을 안고 있는 중년…. 서울 용산구가 제각각 다양한 고민과 아픔을 품고 있는 주민들을 보듬는다. 공공이 앞장서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을 찾아내 마음안부를 확인하고 주민들 역시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서로의 마음지기가 될 예정이다.
21일 용산구에 따르면 구는 민선 8기 남은 2년간 ‘온 마음 숲’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한다. 6개월 이상 준비기간을 거쳐 ‘세계 정신건강의 날’인 지난 10일 ‘마음건강 도시’ 선포식을 열고 그 출발을 알렸다. 박희영 구청장은 “이상동기 범죄 갑질 가정불화 청년고립 따돌림 등 각종 사회문제에 더해 용산구 주민은 대규모 개발에 따른 이주와 생활변화로 인한 불안도 상당하다”며 “급격한 변화에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공동체 지수는 41개 국가 중 39위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이 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가 ‘전혀 없다’는 국민이 20%나 된다. 세계 평균 9%와 비교하면 두배가 넘는다. 박 구청장은 “인터넷 발달로 소통은 쉬워졌지만 서로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줄어든 것”이라며 “현대인이 겪고 있는 마음의 문제는 개인을 넘어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8년 ‘외로움부’를 신설해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용산구는 지난 7월 마음정책 담당 부서를 팀에서 과 단위로 확대하고 관련 조례를 위한 입법예고를 마쳤다. 8개 부서 15개 팀에서 개별적으로 추진하던 마음건강 관련 사업을 한 곳으로 모으고 전문인력과 대면·비대면으로 전용 상담공간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드리는 온 마음의 숲’이라는 기치 아래 4대 분야 17개 추진 전략을 마련했다. ‘땅을 다지다’ ‘씨앗을 심다’ ‘물을 주다’ 등이다. 통합지원체계 구축과 마음건강센터 마련, 생애주기별 마음 잇기, 1인가구부터 육아·맞벌이 부모 등 마음 위로하기 관련 사업이 이들 단계에 포함돼 있다. 마지막은 마음건강이 성장하고 공감대가 확산되는 ‘정원을 가꾸다’이다. 용산구 전체가 ‘마음 숲’으로 탈바꿈하는 단계다.
원효로에 있는 보건분소에 들어설 ‘온 마음 숲 센터’가 거점이 된다. 내년이면 문을 열고 주민들을 맞게 된다. 동시에 주민들이 서로를 돌볼 마음카페를 확대할 계획이다. 박 구청장은 “주민들도 마음건강 캠페인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서로의 마음지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마음건강 도시 선포식에는 어린이 청소년 등 연령대별 대표 주민과 관련 기관 종사자 등 200여명이 참여해 ‘온 마음 숲’ 조성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마음건강 정책에 실천을 더해 치유와 회복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라며 ”마음건강 주치의로 주민 곁에서 연제나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