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관능평가 (sensory evaluation)와 흑백요리사

2024-10-22 13:00:00 게재

넷플릭스의 요리경연 프로그램으로 방영이 끝난 후에도 화제를 낳고 있는 ‘흑백요리사’. 훌륭한 요리사 100명이 요리사의 계급을 나누고 서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식품공학을 전공했으나 조리사 자격증이 없다. 만일 필자가 도마 위에서 일어나는 마술과도 같은 맛의 향연을 근육으로 익혔더라면 식품 분야 연구를 더욱 잘했을 것이며 다양한 연구를 했었을 것이다. 언제나 가지는 아쉬움이다.

흥미롭게 진행되는 흑백요리사는 결선 진출자를 뽑는 1:1 대결에서 심사위원들의 눈을 가리는 장면이 나왔다. 눈 가리고 시식이라고? 맛으로만 대결하겠다는 심사위원의 평가기준을 들으면서 이해는 하면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식품 연구에서 마무리는 관능검사(sensory evaluation)를 하는 경우가 많다. 관능검사를 맛이나 보고 순위를 매겨 ‘좋다’ ‘나쁘다’로 결론짓기 위한 요식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관능검사는 오감(미각 후각 촉각 청각 시각)이라는 주관적 요소들을 객관화하는 작업이므로 까다로운 절차다. 객관화를 위한 실험설계, 실험환경 조성, 결과분석과 통계…. 그전까지 실험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므로 식품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전공과목으로 꼭 이수해야 하는 분야다.

무척이나 까다로운 관능평가

관능검사를 요구하는 상황은 무척 많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 기존의 제품에서 재료를 대체했을 때,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했을 때, 경쟁업체 제품보다 우수함을 입증하려고 할 때 등이다. 관능검사를 하는 전문가들을 패널(panel)이라 하는데, 이 패널들은 기본훈련을 거듭하고 추려낸다. 기본 맛(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간혹 감칠맛이나 매운맛)에 대한 실험을 하는데, 낮은 농도에서 높은 농도까지 나열해 어떤 농도에서 해당 맛을 느끼는지 (이를 최소감응농도) 실험한다.

편협하게 특정 맛에 대해 민감하거나 둔감한 패널들은 제외된다. 정상적인 패널을 추려낸 이후 제품에 대한 테이블 토론이 진행된다. 이 제품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맛 향기 색 감촉 등에 대한 묘사어들을 추려낸다. 즉 제품을 대표하는 관능적 묘사들이다. 그렇다. 국어도 잘해야 한다.

모든 패널이 동의한 묘사어들은 관능검사지에 측정하고자 하는 관능적 지표로 사용된다. 이것을 이용해 강도실험 혹은 순위실험을 한다. 제공되는 시료를 맛볼 때마다 맹물로 입을 헹구고 진정시간이 지나 새로운 시료를 맛을 봐야 하니 시간도 꽤 걸리고 체력도 꽤 소모된다.

패널의 숫자는 통계의 모수로서 적절하도록 충분해야 하므로 이들에게 들이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호도 실험은 이런 전문 패널들이 관능검사를 모두 마치고 난 후 최종적으로 선택을 검증하기 위한 시도다.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식품을 선택할 때 가장 첫 감각은 시각이다. 시각으로 싱싱함이나 부패, 혹은 경험상 먹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후각 또한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코를 막고 시식을 하면 맛을 못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입에서 씹히는 물성감, 그리고 씹힐 때의 소리 역시 미각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경우를 다중감각적 효과, 혹은 교차감각 효과라고 하는데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들도 보인다. 특히 단맛은 시각효과와 환경적 효과에 큰 영향을 받는다. 빨간색은 음료의 단맛 인식을 최대 13%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특정 향이 짠맛을 증대시켜 저염효과를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흑백요리사’에서 시각을 배제한 관능검사는 시각적 정보를 배제하고 본연의 맛을 평가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실제로 입안에는 맛 향기 촉각 청각이 작용했기 때문에 “맛으로만 판단하겠다”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정확하게는 “시각만 배제하겠다”가 맞다. 어느 요리사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시식하겠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지 않을까.

이젠 스토리와 콘텐츠로 먹는다

눈 가리고 시식하는 심사위원들은 한입 먹고 감탄사만 흘러나오거나 어느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맞추기 게임으로 진행되면서 보는 처지에선 갈증을 느꼈다. 눈을 가린 입장이 감정이입이 되는 상황에서 좀 더 다양한 맛의 묘사와 표현이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백요리사의 결론이 음식의 콘텐츠였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어느 음식이든 요리사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한식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한국의 음식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K-푸드에 익숙해지겠지만 여기서 정체되면 안될 것이다. 한식과 연결된 다양한 이야기와 콘텐츠가 그 다음 갈 길이다.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