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자금 이탈 계속되는 한국증시

2024-10-23 13:00:04 게재

8월 초 글로벌 증시는 급락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이와 달리 우리 증시는 상대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S&P500과 나스닥지수는 하반기 13% 내외, 작년 말 이후 25% 정도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고, 독일 증시 역시 하반기 7%대, 연간 17% 올랐다. 상반기 중 부진했던 상태에서 8월 초 급락은 함께 경험했고 이후 회복의 정도는 제일 미미했던 게 우리 증시의 현실이란 얘기다. 상대적 부진의 가장 큰 표면적 이유는 외국인의 공격적 순매도다.

특히 하반기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주식 매도는 해당 기업 주가는 물론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들은 하반기, 특히 9월 이후에만 삼성전자 주식을 1억8000만주 가까이 팔았는데 이는 전체 발행 주식수의 3%에 달한다.

외국인의 삼성전자를 비롯한 ‘공격적 순매도’로 주저앉은 주식시장

물론 외국인 순매도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매도하면 누군가는 매수하는 것이 주식시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매수와 매도의 공격성이다. 즉 이번에 외국인 순매도와 주가급락은 매도의 공격성이 매우 강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원인이다.

국내외 투자자를 막론하고 매수보다 매도가 공격적이었다는 점은 투자자들 사이에 우리 증시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팽배해 있음을 의미한다.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례적으로 ‘기술경쟁력과 회사 앞날에까지 걱정을 끼쳤다’라는 반성문을 낸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경제 자체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와 기술경쟁력으로 투자자들의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번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과거 우리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줘 왔던 수출 측면의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글로벌 경제에 대해 연착륙 기대감이 높고, 이미 올해 상반기부터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방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올해 중반까지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침체, 나아가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등장했던 중국의 경우에도 최근 대대적인 경제 정책으로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과거 경험상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 제조업 위주의 우리 증시가 소외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우리 증시에서의 공격적 매도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일단 나쁘지 않은 수출실적에도 불구하고 내수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정부도 한국은행도 재정건전성과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내수부양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제도적 측면에서 발견되는 지지부진한 의사 결정도 문제다. 금융투자소득세와 상법 개정 등 우리 자본시장의 장기적 매력도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측면의 결정이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따라 늦어지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제도적 불확실성이 적은 시장으로 자금을 이전하고 있다.

여기에 밸류업지수 발표로 시작된 기업 밸류업 방안에 대한 기대 역시 상반기에 비해 수그러들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변화 움직임이 관찰되지 않는 데다 지수 포함 기업 선정 기준의 적정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경제성장 자신감 결여와 지정학적 위험으로 증시부진 이어질 듯

하지만 더 우려되는 것은 최근 들어 대두되는 우리 경제의 장기성장성에 대한 자신감 결여와 지정학적 위험이다. 작년 중반 추정치보다는 상향 조정됐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로 추세 하락을 이어가고 있고 대북 문제 관련 긴장감도 커진 상황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들의 실적 기대치가 낮아지고 시장 전체의 위험이 커진 셈인데 이는 더 나은 대안으로의 자금 이동을 촉진하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비싸지 않다는 이유만이 우리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상황이다. 언급한 우리 증시 고유의 요인에서 반전의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즉 상대적 매력도가 다시 높아질 때까지 자금이탈과 증시의 상대적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석원 SK증권 경영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