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지대 찾아낸 주민수호천사

2024-10-23 13:00:01 게재

유현준 전남 강진군 사회복지사

복지 전수조사로 90% 이상 혜택

지역복지사업 재정비 성과 일궈

“강진에 없는 일을 했당께요. 주민들이 엄청난 혜택을 보고 있어라. 우리 면에 복덩어리가 굴러 왔당께요.”

21일 오후 2시쯤 전남 강진군 신전면 대벌마을에서 만난 윤정석(68) 이장은 입이 닳도록 한 사람을 칭찬했다. 주인공은 유현준 신전면사무소 주무관(42·7급)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유 주무관은 이곳 주민에겐 없어서는 안 될 수호천사다.

전남 강진군 신전면에서 실시한 복지인구 총조사가 지역복지정책을 재정비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사진 전남도 제공

신전면은 땅끝 해남과 완도에 인접한 시골이다. 주민은 1005세대 1670명이며, 여느 시골처럼 대부분 고령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경기침체, 인구감소 등이 겹치면서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졌다. 유 주무관은 이런 주민들을 지켜보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안타까움이 발동했다. 몇 날을 고심했지만 머리만 복잡할 뿐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찾아낸 게 ‘복지인구 총조사’다. “우리나라 복지는 신청주의입니다. 혜택을 받아야 할 주민들이 많은 데도 몰라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요.”

막상 총조사를 꺼내 들었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시범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대상지는 인구 편차 등을 고려해 수양리로 결정했다. 조사 대상은 186세대 322명. 이장과 마을부녀회 도움을 받아 거주 여부, 부채 등 재산 상태, 질병 여부, 주변에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조사했다. 유 주무관은 현장조사를, 함께 일하는 윤채영 실무관(45)은 기록 정리와 자료 입력을 맡았다. 조사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기초생활수급자부터 차상위계층, 중증장애인과 장기 입원 주민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31가구 주민 48명을 찾아내 의료비와 생계비 등을 제공했다. 시범사업만으로 지역 복지혜택을 전면 재정비하는 대단한 성과를 일궈냈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여세를 몰아 지난 1월 본 사업을 시작했다. 수양리를 제외한 18개 자연마을(819세대 1348명)을 샅샅이 훑었다. 조사는 주로 경로당이나 집에서 이뤄졌다. 들녘을 찾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일상이 7개월 동안 이어졌다.

상담을 거부하는 어르신이 적지 않아 애를 먹었다. 수급자 지정을 위한 자녀의 동의 절차도 쉽지 않았고, 보이스피싱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다.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 올 때마다 혜택을 받고 기뻐하는 주민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시 붙잡았다.

“신전면 이장단과 우리 동네 복지기동대 그리고 윤채영 선생의 도움이 없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어렵게 끝낸 총조사는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기초생활수급자 109가구 166명과 위기가구 254가구 311명을 찾아냈다. 실직과 폐업, 질병과 부상 등으로 긴급 지원이 필요한 35가구 46명에게 9095만원을 지원했다. 또 2가구는 전남사회서비스원의 긴급 돌봄 지원을 요청했다. 가정위탁 세대도 3가구나 찾아냈다. 다섯 살 손녀를 키우고 있는 김 모 씨 부부는 이번 총조사로 양육보조금과 생계비로 100만원이 넘는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524가구는 수도와 전기요금을, 856명은 휴대전화 요금을 감면받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전면 주민 대부분(996가구 1644명)을 맞춤형 혜택을 안내받는 ‘복지멤버십’에 등록했다. 복지멤버십은 생애주기별로 83종의 복지혜택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혜택 받는 주민이 늘면서 면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우선 공무원에 대한 생각이 바꿨다. 복지 혜택에 대한 주민 인식도 한층 높아졌다. 특히 인적 연결망이 촘촘해지면서 사회안전망이 훨씬 두터워졌다. 강진군은 현재 이 같은 모범사례를 모든 면에 적용할지를 검토하고 있다.

유 주무관은 요즘 주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고 정부 공모사업 발굴에 한창이다. “일만 만든다는 핀잔도 있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천성이 그러는데요. 주민들을 위해 뭐라도 남겨 놓은 게 공무원 역할이지 아닐까요.” 유 주무관이 인터뷰 마지막에 남긴 공직상이다.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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