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달러의 대안 찾아야”
브릭스 정상회의 ‘카잔 선언’ 채택 … 다극질서 위한 새 경제시스템 추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이틀째인 2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달러를 무기삼은 미국과 서방의 각종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여러 시스템을 제안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달러가 정치적 수단이 됐다고 비판하면서 “달러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선 브릭스 국가들의 새로운 투자 플랫폼과 곡물 거래소 등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정학적 긴장이 계속 증가하고 일방적인 제재, 보호주의, 불공정 경쟁의 관행이 확대하고 있다”며 브릭스 국가들이 경제 잠재력 극대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방안의 하나로 “새로운 브릭스 투자 플랫폼 창설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우리 국가 경제를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글로벌 사우스·이스트’에 재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브릭스 국가들이 세계 최대 곡물·콩·유지 종자 생산국들에 속한다며 브릭스 곡물 거래소를 설립해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가격을 형성함으로써 식량 안보를 보장하는 데 기여하자고 밝혔다. 그는 귀금속과 다이아몬드 거래를 위한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우마 호세프 신개발은행(NDB) 총재가 “달러가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발언하자 “실제로 그렇다”면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러를 이용하는 것은 달러의 신뢰를 떨어트리기 때문에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달러를 거부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지만, 달러와 함께 일할 수 없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이 세계 경제에서 더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국제 금융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도록 세계무역기구(WTO) 문제를 다루는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역시 서방의 견제를 받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브릭스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발휘해 재정·금융 협력 심화와 금융 인프라 상호 연결 촉진, 높은 수준의 금융 안보 수호, NDB 강화에 나서고 국제 금융 시스템이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를 더 잘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건강 문제로 화상을 통해 정상회의에 참석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도 브릭스 국가들만의 대체 결제 수단을 만들 때가 됐다고 거들었다.
러시아, 중국,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이란, 이집트 등 브릭스 가입국 정상들이 회의 후 채택한 ‘카잔 선언’에는 새 투자 플랫폼과 곡물거래소 창설 계획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브릭스 국가 간 무역 절차를 단순화하고 금융 분야 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도 들어갔다.
하지만 러시아가 달러 패권을 흔들기 위해 추진할 것으로 전망됐던 브릭스 단일통화나 암호화폐 사용에 대한 언급은 카잔 선언에 들어가지 않았다.
브릭스 국가들은 카잔 선언에서 우크라이나 분쟁과 중동 위기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대화를 통한 우크라이나 분쟁의 중재와 평화적 해결에 주목하고,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분쟁을 제3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사태를 조기에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가자와 레바논의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브릭스 국가들이 모든 집단적, 개별적 역량을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룰라 대통령도 “팔레스타인의 일이 레바논으로 옮겨가고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도 마찬가지”라며 ‘두 개의 전쟁’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