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곤란 ‘폐의약품’ 우체통으로 수거
무단투기 오·남용으로 토양·하천 오염↑
서울시·환경부·우정사업본부 업무협약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 처치곤란한 폐의약품을 이제 우체통에 버릴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우체통과 전용수거함을 활용한 폐의약품 수거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집이나 이동 동선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폐의약품’이란 글씨를 써서 넣으면 우체국에서 수거해간다. 우편 요금은 후불 처리되며 서울시와 자치구 등 지자체가 요금을 부담한다. 서울시와 환경부 우정사업본부 환경재단이 업무협약을 맺어 폐의약품 수거 사업에 힘을 모은 결과다.
지금까지 시민들은 폐의약품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전용 수거함은 찾기 힘든데다 위치를 알아도 약봉투 하나 버리러 수거함까지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폐의약품을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지 않아야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른바 ‘모범시민’들은 집에 약봉투를 쌓아두는 일이 잦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쌓이는 약봉투를 참기 어려워 일반 쓰레기 봉투에 처리한다. 심한 경우엔 하수물과 함께 흘려 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매립하거나 하수도로 버려진 폐의약품이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영국 요크대 등 국제연구팀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서울 한강 8개 지점에서 채취한 시료에선 활성 약물 성분 61종 가운데 23종이 검출됐다. 논문에서 비교한 전 세계 137개 주요 강 가운데 한강은 43번째로 높은 약물 농도를 기록했다.
서울은 하수도 보급률이 100%이지만 인구가 많고 약품 배출량이 많은 탓에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성분이 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농도가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이 섭취한 약물이 대소변을 통해 배출되는 경우도 많지만 무단투기도 주요 오염원 가운데 하나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최근엔 약봉투 뒷면에 약의 성분과 효능이 자세히 표시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남은 약을 용도별로 분류해 장기 보관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용기한이 지난 약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약은 제조된 순간부터 유효성분이 서서히 감소해 독성물질이 발생하며 이 때문에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아깝다고 사용기한 이상 복용할 경우 내 몸은 물론 하수까지 오염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체통 활용, 수거량 32% 증가 = 우체통 활용은 폐의약품 수거에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약국들이 폐의약품 수거업무를 하지 않게 되면서 대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한 결과 폐의약품 수거량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체통 수거 실적도 지난해 7월 212㎏에서 지난 7월 487㎏으로 훌쩍 뛰었다.
서울에는 879개의 우체통이 있다. 별도로 만든 폐의약품 전용수거함도 889개까지 늘렸다. 제한적이지만 약국을 통한 수거도 가능하다. 자치구가 약국들을 설득해 8개구, 742개 약국이 수거업무를 하고 있다. 여기에 근로복지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들까지 동참하면서 현재 서울 전체에는 2549개 폐의약품 수거함이 운영되고 있다.
우체통이나 수거함에 폐의약품을 넣을 땐 일반 우편물과 구분되도록 밀봉한 뒤 겉면에 ‘폐의약품’이라고 써둬야 한다. 전용수거함 위치는 ‘스마트서울맵’ 누리집이나 앱에 접속해 검색창에 ‘폐의약품’을 입력하면 된다. 우체통은 검색 포털에서 ‘우체국 찾기’ 또는 ‘우체통’으로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