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대통령 임기 중반 ‘권력 충돌’
윤 대통령·한 대표, 지난 1년 내내 ‘김 여사 충돌’
한, ‘민심’ 앞세워 공세 … 윤, ‘대통령의 힘’ 맞대응
공멸 위기감 … 친한 “김 여사 극복하면 민심 회복”
현재권력 윤석열 대통령과 미래권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충돌이 점입가경이다. 임기 말도 아닌 중반의 ‘권력 충돌’은 전례 없는 장면이다.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를 명분 삼아 윤 대통령을 압박하고,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힘’으로 맞서고 있다. 역대 ‘권력 충돌’은 대통령의 탈당과 재집권 실패로 귀결되곤 했다. 공멸 위기감이 커지는 대목이다. 윤-한 갈등도 공멸로 치달을지, 아니면 극적 반전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25일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한 갈등은 지난해 12월 한 대표가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촉발돼 1년 동안 점점 커지고 있다. 검찰 선후배로 20여 년간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지난 1월 한 대표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겨냥해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급격히 멀어져갔다.
한 대표는 김 여사 논란이 잇따르자 윤 대통령에게 3대 요구(△대외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 절차 협조)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거부한 특별감찰관을 재차 꺼냈다. 내달 의원총회에서 친윤과 친한이 세싸움까지 벌일 태세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민심이다. 민심이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만큼,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를 앞세워 윤 대통령에게 쇄신책을 압박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실망해 대안을 찾는 보수층도 한 대표에게는 든든한 우군이다. 10.16 재보선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건 한 대표를 돕기 위해 지지층이 결집한 ‘한동훈 효과’로 해석됐다.
윤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윤 대통령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힘’이 존재한다. 행정부를 통솔하고, 내각과 공공기관 인사권을 쥐고 있다. 검찰과 경찰을 휘하에 두고 있다. 여당 내 최대계파인 친윤을 부릴 수도 있다.
양측의 전력이 부딪히면 누가 이길까. 역대 ‘권력 충돌’에서는 현재권력이 밀리기 일쑤였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부분 대통령은 임기 말 여당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탈당의 숙명’을 피하지 못했다. 대부분 대통령이 임기 말 국정 실패로 인해 지지도가 추락하는 바람에 미래권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윤-한 갈등의 결말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다만 현재권력을 제압한 미래권력이 전부 승승장구한 건 아니라는 점은 한 대표에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대통령과 극심한 갈등을 빚었던 이회창 후보나 정동영 후보는 대선에서 패했다.
이 때문에 윤-한 갈등을 지켜보는 여권에서는 “무분별한 ‘권력 충돌’은 공멸을 부를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온다. 민심이 등 돌린 윤 대통령도 우울한 결말이 우려되지만, 윤 대통령이 쏟아낼 ‘대통령의 힘’을 견뎌야하는 한 대표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이란 걱정이다. 당장 특별감찰관을 논의할 의원총회에서 민심을 앞세운 친한이 의원 숫자를 앞세운 친윤을 제압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친한 인사는 25일 공멸 위기감을 인정하면서도 “윤 대통령 부부를 아무 일 없다는 듯 껴안고 가기에는 민심의 분노가 너무 크다. 김 여사 문제를 극복하면 민심도 부산 금정구 선거에서처럼 돌아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