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파로 사냥하는 심해 고래, 폐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야”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심해에 사는 고래가 폐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섭취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시각적으로 착각을 일으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는다는 종전 연구들과 달리 반향정위에 의존하는 먹이 사냥 습성 때문에 일어난다는 분석이다.
반향정위란 생물이 소리를 내서 물체에 부딪혀서 돌아오는 반향(일종의 메아리)을 통해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한 예로 박쥐가 초음파를 발생시켜 먹이나 장애물의 위치를 확인하는 식이다.
28일 국제학술지 ‘해양오염학회지(Marine Pollution Bulletin)’의 논문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서 반사되는 소리가 심해 고래류의 먹이와 비슷하다’에 따르면, 이빨고래들이 먹이와 음향학적 유사성 때문에 물속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섭취할 수 있다. 향유고래와 부리고래와 같은 심해고래들이 플라스틱을 시각적으로 먹이로 착각하는 게 아니라, 반향정위에 의존하는 먹이습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연구는 이빨고래류가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를 보고 먹이로 착각해서 삼킨다고 여겨져 왔던 것과 다른 결과다. 통상 이빨고래들이 오징어와 해파리 같은 젤라틴 먹이종과 물리적으로 유사한 플라스틱 봉지나 필름류를 착각해서 먹는다고 알려져 왔다.
이빨고래들은 숨구멍 아래에 있는 성대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막인 음성막을 진동시켜 음파를 만들어 낸다. 이 음파는 멜론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지방 기관을 통해 증폭되고 퍼져나갈 방향이 정해진다.
연구진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보퍼트의 파이버스 섬과 애틀랜틱 비치 해안선에서 고래 위에서 자주 발견되는 비닐봉지나 페트병 밧줄 풍선 등과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집했다. 이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소리를 얼마나 반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음향측심기를 활용했다. 음향측심기는 소리를 이용해서 물체를 탐지하는 기계다.
연구진은 선박 아래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매달아 바다 4~5미터 깊이에 고정했다. 38, 70, 120 kHz(킬로헤르츠)에서 최소 2분 동안 이빨고래의 반향정위 소리와 비슷한 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또한 이빨고래의 먹이인 오징어 등의 음향 특성과 비교를 했다.
그 결과 조사한 3가지 주파수 모두에서 음파 검사를 실시한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의 88.9%가 검사한 오징어 먹이의 표적 강도와 일치하거나 초과했다. 어떤 경우에도 플라스틱 물품의 표적 강도가 특정 주파수에서 가장 낮은 표적 강도를 보인 먹이보다 낮지 않았다. 이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표적 강도가 음향학적으로 고래 먹이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제조업체들은 제품의 물질적 특성을 변경하여 음향학적으로 감지되지 않는 플라스틱을 만들려고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음향학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어망은 오히려 고래가 걸릴 위험을 증가시키는 등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래 위에 들어갈 수 있는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마지막 회의인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11월 25일부터 부산에서 열린다. 이번 협약에는 플라스틱의 생산·사용·소비 등 전 생애주기 차원에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생산 단계부터 감축이냐 재활용이냐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