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자전거래’ 증권사 제재 확정 올해 넘기나
금감원, 30일 7곳 제재심 재개 … KB·하나 중징계 후 4개월 만에 결론낼 듯
증선위 논의는 시작도 못해 … “2016년 제재했는데 또 발생, 엄단해야 근절”
고객 계좌의 손실을 다른 고객 계좌로 전가시킨 이른바 ‘불법 자전거래’를 벌인 증권사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가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2월 검사결과를 발표한 이후 10개월이 넘었지만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는 제재 논의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증권사의 불법 자전거래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고 2016년 금융당국이 제재를 했지만, 2022년에 또다시 발생했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당시 불법 자전거래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 등으로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한 것으로 보고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제재 논의가 계속 늦어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희석되고 또다시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오는 30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증권사 7곳에 대한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 6월 KB증권과 하나증권이 중징계를 받은 이후 4개월 만에 나머지 증권사들에 대해 결론을 내는 셈이다. 다만 이날도 금감원과 증권사들이 쟁점을 놓고 첨예하게 다툴 경우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제재심의 대상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교보증권·유진투자증권·SK증권·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 7곳이다.
이들 증권사들은 증권사가 고객과의 1대1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적 금융상품인 채권형 랩어카운트 및 특정금전신탁과 관련해 불법 자전거래(연계·교체거래)를 벌였다. 일부 운용역들이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수익률 달성을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객계좌 간 손익을 이전했다. 특정고객 계좌의 기업어음(CP)을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했다. 증권사별 손실전가금액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했다.
일부 증권사는 시장상황 변동으로 랩·신탁 만기 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의 결정 하에 고객 계좌의 CP를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제공했다. 금감원은 업무상 배임혐의와 관련해 9개 증권사 운용역 30여명의 자료를 수사당국에 보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열린 제재심에서 KB증권과 하나증권에 대해 일부 영업정지 3개월을 의결했다. 관련 직원들에 대해서도 직무정지와 감봉 등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홍구 KB증권 대표는 주의적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 대표는 불법 자전거래가 벌어질 당시 WM영업총괄본부장을 맡고 있어서 감독 책임을 지게 됐다.
금감원 제재심 결정으로 징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증선위가 사실상 제재를 최종 결정한다.
증선위는 KB·하나증권의 금감원 제재가 끝났지만 나머지 증권사들의 금감원 제재 절차가 끝난 후 일괄해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이 불법 자전거래 규모가 큰 2개 증권사의 제재를 먼저 진행한 후 증선위 결론을 이끌어내겠다고 계획한 것과 달리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7개 증권사에 대한 제재 논의를 30일 끝낸다고 해도 올해 안에 증권사 제재가 확정될지는 불투명하다. 증선위는 현재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사건 등 기존 제재 안건들도 밀려 있는 상황이라 언제 증권사 제재 논의를 시작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또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금감원과 증권사들이 쟁점을 놓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일 경우 단시간 내에 결론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2016년 현대증권, 교보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3개 증권사의 불법 자전거래 규모가 최대 5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파장이 컸지만 제재 결과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았다”며 “불법 자전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제재를 통해 사회적으로 잊혀 지지 않은 상태에서 CEO 제재 등 엄단을 통해 증권사들이 내부통제를 강화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