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모펀드, 일본기업 적극 공략
WSJ “지배구조개선 등 인수거래에 우호적 환경”
일본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두 회사 간에 보기 드문 기업 인수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사모펀드 KKR과 베인캐피털은 일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후지 소프트를 놓고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KKR이 먼저 인수를 제안해 기업 이사회와 일부 대주주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베인캐피털이 그보다 7.4%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총가치 42억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재 후지 소프트 주가는 KKR의 제안가격보다 높게 거래되고 있다. 이는 베인이 인수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 또는 KKR이 더 높은 입찰가를 제시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WSJ는 “후지 소프트 인수전은 글로벌 사모펀드의 일본 내 입지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라고 짚었다.
2023년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사모펀드들의 거래액은 5조9000억엔(약 390억달러)에 달했다. 전년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연평균 1조엔 미만이었다. 데이터 추적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일본기업 인수에 초점을 맞춘 사모펀드들의 총 운용자산은 620억달러로, 2019년 말 대비 2배 넘게 늘었다.
베인캐피털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사모펀드 시장이 됐다. 역사적으로 5~10% 정도에 머물렀던 비중이 30%로 증가했다.
글로벌 사모펀드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일본의 노력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정부와 증권거래소는 기업들에게 대차대조표를 슬림화하고 주주수익률을 개선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기업들은 인수 제안을 더욱 진지하게 검토하고 비핵심 사업을 분사하거나 매각해야 하는 선택지로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모펀드들에 호재가 되고 있다.
게다가 주주 행동주의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일본기업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후지 소프트 매각을 추진하면서 사모펀드들의 인수 관심이 본격화됐다.
일본산업계의 아이콘인 히타치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은 좋은 선례다. 원자로부터 철도까지 다양한 사업을 벌이던 114년 역사의 히타치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무릎을 꿇었다. 2008년 회계연도 당시 일본기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787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히타치는 지난 수년 동안 인상적인 반전 드라마를 썼다. 2018년 말 이후 주가가 7배 가까이 급등했다. 히타치는 비핵심 사업분야를 매각했다. 매각자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거나 자동화 및 전력장비 같은 더 유망한 기업 인수에 활용했다. 물류와 칩 장비 제조, 철강 제조 등 히타치가 분사한 많은 자회사를 KKR과 베인 같은 사모펀드 회사들이 인수했다.
향후 사모펀드들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전망이다. 일본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주요 증권거래소는 기업들에게 장부가 이상으로 주가를 올리도록 재촉하고 있다. 최근 금리인상에도 저금리가 유지되는 상황은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수거래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사모펀드 회사 칼라일에 따르면 레버리지 바이아웃(인수금융을 통한 M&A)의 자금 조달비용은 미국의 경우 인수액의 9~10%지만 일본은 약 2~3% 수준이다.
WSJ는 “충분한 자금, 더 나은 수익률, 수많은 잠재적 인수 대상을 갖춘 일본은 사모펀드의 새로운 놀이터가 됐다. 사모펀드들은 앞으로도 계속 일본을 주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