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차기 내각구성 밀당 시작…“재정팽창 압력 커져”
연립여당 참패 배경에 물가급등 등 서민생활 고통 작용
자민·입헌, 감세·예산확대 수용으로 세력 불리기 가능성
외환시장 엔화 약세 … 일부 언론 “잃어버린 40년 우려”
일본 정국이 혼돈에 빠지면서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집권 자민당은 물론 어느 정당도 안정적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면서 차기내각 구성을 위한 ‘합종연횡’이 시작되면 경제 및 재정, 금융정책 일부의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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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신문은 29일 “재정 팽창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신문은 27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 결과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참패하면서 차기내각 구성의 불투명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은 다음달 예정된 특별국회에서 총리 지명선거를 앞두고 정당간 합종연횡의 핵심이 경제정책으로 모아질 것이라는 관측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선거에서 일본 국민의 집권당에 대한 심판은 치솟는 물가 등에 따른 서민생활의 고통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도쿄신문은 “엔저와 물가 급등이 이어져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고 서민생활은 향상되지 않았다”면서 “중의원선거에서 여야간 의석의 균형을 이룬 데는 이러한 유권자의 선택이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향후 일본 정치권은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경제정책을 앞다퉈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기존 의석수 7석에서 28석으로 크게 늘어난 국민민주당의 행보가 주목된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에서 분리해 나간 국민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외교안보 등에서 자민당에 가깝다는 평가지만, 이번 선거에서 ‘실질소득을 늘려라’라는 실용적 구호로 젊은층의 마음을 잡았다.
국민민주당은 선거 공약으로 △소비세(부가세) 5%로 인하 △기초소득공제 103만엔에서 178만엔으로 상향 △가솔린 가격의 인하를 위한 감세 등을 내세웠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이 연립 또는 제휴 대상 1순위로 삼고 있는 국민민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을 상당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특히 자민당은 과반의석에 18석 부족한 상황에서 28석을 가진 국민민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도 “연립정권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면서도 “정책을 우선에 두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여지를 뒀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여당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야당의 협력을 얻으려면 경제정책의 일부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결과적으로 향후 정부의 경제정책은 보다 재정확장적이고, 이에 따라 금융완화를 지속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경제대책이 야당과 협력의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민민주당 등이 내세운 공약을 수용할 경우 가계 지원으로 재정지출이 팽창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입이 줄어들고 재정규율도 방만해 질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입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비자민 연립정권’이 발족하더라도 세출 증가 압력은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향후 정권 구성과 운영 과정에서 재정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추가 인상은 더뎌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에 따라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이를 일본은행이 방어하는 ‘아베노믹스’ 방식의 재정 및 통화정책 운용이 재개될 수도 있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시바 정권의 기반이 튼튼하면 올해 1회, 내년 1~2회 정책금리를 인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선거 결과에 따라) 이러한 페이스는 둔화될 수밖에 없고, 올해 안에 추가 금리인상은 어려워졌다”고 했다.
모리타 초타로 올즈앤브리지 대표는 “아직 재정 전망에 대한 채권시장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대규모 재정 확충과 감세가 실시되면 영국의 ‘트러스 쇼크’와 같은 금리 급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러스 쇼크는 2022년 취임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자 파운드화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을 말한다. 트러스는 당시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면서 역대 영국 총리 가운데 최단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보다 극단적인 우려도 일부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계열 니혼TV는 28일 총선결과에 따른 정국 전망을 하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40년’을 우려하는 주장까지 내놨다. 니혼TV는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을 거쳐 최근 겨우 디플레이션 탈출을 앞두고 있다”며 “이번 선거결과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일본경제) 정체를 길어지게 해 잃어버린 40년이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편 28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3.35엔 안팎에서 거래를 마쳤다.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29일 오전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3엔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정치적 불투명성이 커지는 데 더해 미국 장기금리의 상승이 엔·달러 환율을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