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적자수렁 부코핀, 국민은행 투자·지원’ 전방위 검사
‘전산시스템 구축 실패’ 면밀히 따지기로
2020년 이사회 결의없이 2억달러 송금 드러나
이복현 “운영리스크 관리 안일함 없는지 살펴야”
우리금융 밝힌 ‘내부통제 쇄신안’ 실효성도 점검
KB국민은행이 인수한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현 KB뱅크) 부실과 관련해 금융당국이 전방위 검사를 벌이기로 했다.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8월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은 내달 1일 현장검사를 마칠 예정이다. 현장검사 이후 통상 추가 검사가 진행되는데 이번 추가 검사에서는 부코핀은행의 전산시스템 구축 실패와 관련해 면밀히 따질 예정이다. 금감원은 부코핀은행 지분투자·인수 결정 과정에 대해 2021년 종합검사를 통해 한차례 들여다본 적이 있다. 검사 결과 2020년 국민은행이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부코핀은행 지분 확대를 위해 2억달러를 송금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이사회 보고는 미리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해 제재가 아닌 경영유의 등의 조치를 취했다.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에서 2021년 이후 국민은행이 부코핀에 추가로 투자·지원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전 종합검사 당시 부코핀에 투자된 금액은 4097억원이지만 2021년 11월 이후 1조1025억원이 추가 투자됐고, 후순위 대출(2577억원)과 기타 유동성 지원( 8900억원), 지급보증(4000억원) 등을 고려하면 총 2조6502억원이 투입됐다. 2022년 이재근 은행장이 취임한 전후로 대규모 자금이 투자·지원된 것이다. 하지만 경영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고, 손실이 계속 발생하면서 국민은행의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코핀은행 지원, 의사결정 과정 집중검사 = 이복현 금감원장은 29일 임원회의에서 “KB금융 관련 반복적인 지적은 평판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영리스크 관리에 안일함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복적인 지적은 부코핀은행 투자결정 및 전산시스템 개발 과정의 문제, 콜센터 업무위탁 관리 등을 말한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국민은행의 안일한 리스크 관리와 함께 금감원도 안일하게 사안을 대처했다는 지적으로, 대내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해 강도 높은 검사를 예고했다.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에서 부코핀은행 투자·지원 결정 과정을 살펴보고 있지만 전산시스템 구축은 주요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산시스템 구축 실패 문제가 지적되면서 집중 검사를 벌이기로 했다.
부코핀은행은 대출 심사 승인 과정, 대출 실행일과 만기일, 기준금리 이자 계산 방식 등을 모두 수기로 작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무의 비효율성이 높고 거래의 투명성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부실 규모를 정확히 산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국민은행은 지난해 1월 부코핀은행의 차세대 전산시스템 개발을 착수했다. 당초 올해 8월 가동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됐지만 시스템 구축에 실패했다. 수기로 작성된 여신데이터 등이 부실하고 불완전해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시스템 구축 사업자를 바꾸고 내년 초 작동을 목표로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구축·가동되지 못할 경우 부코핀은행 경영정상화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전산시스템 개발 과정을 비롯해 내년 초 시스템 구축 가능성 등 전산시스템과 관련한 전반적인 위험을 따져보고 있다. 금감원은 부코핀은행 부실관리의 문제점과 함께 경영정상화에 대한 근본적 개선방안 등도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금융 내부통제 점검 강화 = 이복현 금감원장은 KB금융과 함께 우리금융에 대한 점검도 강조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해서도 현재 정기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 원장은 “우리금융의 내부통제와 건전성 관리 수준이 현 경영진이 추진 중인 외형확장 중심의 경영이 초래할 수 있는 잠재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지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추진 중인 우리금융지주는 금감원 검사결과에 따라 인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내부통제와 건전성 관리 수준을 전제 조건으로 언급한 것이다. 올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이 발생한 이후 회사 차원에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10일 국정검사 증인으로 출석해 “회장 권한과 기능을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며 “자회사 임원 인사권을 내려 놓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대책을 밝혔다.
하지만 금감원은 임 회장이 밝힌 지배구조 쇄신안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금융의 제도 개선안에 대해서도 실효성을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잠재리스크를 ‘조직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파벌주의 용인, 금융사고에 대한 안일한 인식,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경영체계 지속 등으로 건전성 및 내부통제 약화를 초래할 위험 등’으로 보고 있다. 이 원장은 “(KB금융·우리금융의) 이러한 운영리스크와 건전성 문제 등이 그룹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