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X·자질없는 인간’ 표현 “모욕죄 아냐”

2024-10-30 13:00:17 게재

1·2심, 벌금형 → 대법, 파기환송

“부정적 감정 담긴 추상적 표현”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이 추진위원회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단체대화방에 추진위원장을 겨냥해 “도적X”, “자질 없는 인간”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벌금 150만원)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조합원 70여명이 참여 중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을 향해 ‘도적X’, ‘자질 없는 인간’,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 등의 표현이 담긴 글을 9차례 올려 공연히 피해자를 모욕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추진위는 2018년 10월 시에 주택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지만, 보완자료의 제출을 요구받자 이듬해 1월 말께 신청을 취하하고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재신청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진위가 조합원들에게 회계 관련 서류를 공개하지 않고 추진위원장의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업무용역사 등이 사업과 관련해 과도한 이익을 취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로 인해 추진위와 조합원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추진위에 불만을 품은 조합원들은 비대위를 조직했고 A씨도 가입 후 단체대화방에 추진위의 운영방식 등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했다.

A씨는 작성 경위에 대해 “비대위 회원들에게 추진위원장의 불법사실을 널리 알리고 대응방안 등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1·2심은 A씨의 표현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모욕적 표현이라고 보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A씨가 사용한 표현이 추진위원장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모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법상 모욕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어떤 표현이 모욕죄의 모욕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들의 관계, 해당 표현에 이르게 된 경위, 표현 방법, 당시 상황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추어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한 “어떤 표현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예의에 벗어난 정도거나,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을 나타내면서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이나 욕설이 사용된 경우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으로 볼 수 없어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원은 해당 표현이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로 구성된 단체대화방에서 이뤄졌고, 피해자의 불법 사실을 알리고 대응방안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점을 고려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표현들이 포함된 글은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례한 표현이 담긴 글에 해당할 뿐”이라며 “피해자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 포함된 글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모욕죄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가 조화롭게 보호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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