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출석한 두테르테 ‘비사법 살인’ 논란
‘마약과의 전쟁’ 유혈진압
시장 시절 ‘암살단’ 운용 인정
아시아판 트럼프로 불리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과거 행적이 필리핀에서 큰 파장을 부르고 있다. 대통령 재임시절 추진했던 ‘마약과의 전쟁’에 따른 유혈 진압 등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를 받고 있는 그는 최근 필리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통치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범죄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다른 범죄자들로 구성된 ‘암살단’(death squad)을 운영했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임기가 끝난 뒤 28일 상원 청문회에서 처음 공개석상에 나온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오랫동안 다바오시 시장이었을 때 7명의 범죄자들로 구성된 암살단을 운영했다고 인정하면서 “이들 7명은 경찰이 아니었고 갱단이었다”고 말했다. 또 “암살단에 누군가를 죽이라고 지시하면서,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대신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6~2022년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한 살인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지만, 비사법적 살인을 명령한 적이 없다면서 “내가 범죄자를 죽이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고 조사에 참석한 전직 경찰서장들에게 묻기도 했다.
두테르테는 다바오에서 범죄 퇴치 캠페인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으로 2016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뒤, 경찰을 동원한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천명의 용의자가 사망해 ICC 조사를 받는 중이다.
인권단체들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경찰과 알려지지 않은 공격자에 의해 6252명이 총에 맞아 숨졌으며, 그 숫자는 수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테르테의 최대 비평가 중 한 명인 레일라 데 리마 전 상원의원은 청문회에서 비사법적 살인에 대한 적절한 증거와 증인이 있지만 증인들은 두테르테에 대한 증언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기각된 혐의로 6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했던 그녀는 “마약은 파괴해야 하지만 생명을 파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지팡이를 짚고 상원 청문회장에 나타난 79세의 두테르테는 평소의 자유분방한 스타일과 달리 미리 준비한 성명을 차분히 낭독했다. 그는 성명에서 마약과의 전쟁 캠페인에 대해 “모든 성공과 실패에 대해 저 혼자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캠페인에 동원했던 경찰에 대해 “경찰이 제 명령에 따라 한 모든 일에 대해 저는 책임을 질 것”이라“감옥에 가야 할 사람은 저여야지, 제 명령에 복종한 경찰관이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테르테는 레일라 데 리마 여사와의 논쟁 과정에서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마약 범죄가 다시 늘어났다며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약 범죄를 모두 소탕하겠다”고 말해 일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