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양호’ 강조하는 정부 경기진단, 믿을만한가 ②
바닥경기는 사상최대 불황 … 자영업자 작년 99만명 폐업신고
내수도 회복세와는 거리 멀어 … 카드론 잔액 40조 돌파 ‘역대최대’
정부는 “수출·내수 회복세로 판단” … 중소기업 파산건수 역대최고
“(최근 경기지표를 보고) 경기침체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GDP 순환변동치가 작년 2분기에 바닥을 쳐서 올라오고 있다. 3분기 수출은 최근 6개 분기 연속 증가한 기저효과와 자동차 파업 등 일시적 요인의 영향으로 조정됐지만 향후 수출은 대체로 양호한 흐름이 예상된다.”
지난달 28일 최상목 부총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답변이다. 최근 경기 관련 의원들의 우려에 대한 답변이다. 3분기에 일시적 조정은 있었지만 수출과 내수 모두 양호한 흐름이란 진단이다.
시장 현실은 거꾸로다. 이미 주요 대기업들은 줄줄이 비상경영을 선포한 상태다. 올해는 물론 내년 경기도 쉽지 않다고 판단한 시장이 이미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보다 더 힘든 곳은 바닥경기다. 가계와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은 ‘불황이 시작됐다’고 아우성이다. 관련 지표도 불황을 가르키고 있다.
◆국민 58% “더 어려워질 것” = 경기불황에 대한 우려는 국민인식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국민 58%가 향후 경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 반면 16%만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경기인식은 윤석열 대통령의 ‘역대 최저 지지율’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정례여론조사(24~26일. 1001명. CATI.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향후 1년간 우리나라 경기 전망을 물은 결과 54%가 ‘나빠질 것’이라고 봤다. 개인의 살림살이 전망을 물었더니 좋아질 것이란 응답은 14%에 그쳤다. 31%가 ‘나빠질 것’이라고 봤고 54%는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갤럽은 “올초 잠깐 호전되는 듯했던 체감 경기가 4월 총선 이후 다시 나빠졌고 이번 달은 전월보다 더 악화됐다”라고 분석했다.
경기불황 지표는 바닥경기를 상징하는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에서 더 뚜렷하다.
1일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을 접고 폐업신고한 사업자(개인·법인)는 98만6487명을 기록했다. 전년(86만7292명) 대비 11만9195명 증가했다. 지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 역시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올해 자영업자 수는 563만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854만4000명)의 19.7%에 그쳤다. 자영업자 비중이 20% 선 아래로 떨어진 것도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이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체력이 많이 소진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바닥경기 주요지표 ‘카드론’ = 바닥경기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가 ‘카드론’이다. 신용이 떨어져 은행 같은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쓰는 급전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지표 역시 ‘사상최대 불황’을 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개 주요카드사의 지난해 ‘할부카드 수수료’는 3조1734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자료 집계 이래 최대치로, 처음 3조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추세가 더 가파르다. 상반기(1~6월)에만 이미 1조7037억원을 기록, 최대치를 갱신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 일부 저신용자들은 법정최고금리(20.0%)에 육박하는 수수료에도 할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 할부결제 이용액도 69조9347억원이다. 지난해 최대치였던 상반기 68조2339억원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꼽히는 카드론도 잔액이 역대 최대치를 매월 경신하며 카드사 수익도 늘고 있다. 8대 카드사의 카드론 수익은 지난 2015년(2조9320억원)부터 매년 늘어 지난해엔 4조532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2조4009억원을 기록, 역시 최대치를 다시 쓸 가능성이 높다.
카드론 잔액도 역대 최대치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 8개 전업카드사 카드론 잔액은 37조6314억원이었다. 사상 첫 4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연체 47.8% 급증 = 경기둔화와 내수시장 부진의 여파는 중소기업도 강타하고 있다.
실제 빚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올해 대형은행에서만 연체액이 8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 3분기말 중소기업대출 연체액은 2조448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말 기준 연체액 1조6557억원 대비 약 47.8%(7929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4대은행의 연체율 단순평균도 0.31%에서 0.43%로 0.12%p 급등했다.
중소기업 연체율이 급증한 이유는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으로 중소기업의 대출상환 능력이 예상보다 더 악화하면서다. 한국은행이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2만3137개사를 분석한 결과 올 2분기 중소기업 영업이익률은 1년 새 5.0%에서 4.4%로 낮아졌다. 코로나19 당시 중소기업 차주들이 받았던 대출이 상환유예·연장 등을 거치면서 상환시기가 겹친 이유도 있다.
이자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한계 중소기업도 10곳 중 4곳이나 된다.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의 비중은 42.3%였다. 코로나19가 절정이던 2022년에 기록한 비중과 맞먹는다. 이자보상비율이 100%보다 낮으면 기업이 한 해 동안 번 돈이 대출이자보다 적다는 뜻이다.
파산신청 건수도 최대치다.
대법원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1~9월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신청 건수는 전년 동기(1213건) 대비 19% 증가한 1444건을 나타냈다.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같은 기간 기준 역대 최다 건수다.
어느 지표로 보든 2024년 11월 현재 한국의 자영업과 중소기업은 ‘역대 최대 불황’을 향하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