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 반란, 자민당을 위기로 몰아넣다

2024-11-04 13:00:01 게재

중의원 선거, 20~30세대 지지 반토막 … 제3 야당 “손에 쥐는 소득 늘려주겠다”에 열광

지난달 치러진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참패했다. 1955년 창당 이후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경우는 두 차례다. 더구나 이번에는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과반에 미달한다. 자민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 정국은 언제나 혼란스러웠다. 여야를 넘어선 이합집산과 짧게는 두달에 불과한 ‘단명 내각’이 거듭됐다.

자민당 참패의 결정타는 청년층 반란이다. 20~30대 젊은 세대는 2021년 선거에서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번에는 완전히 돌아섰다. 이탈한 청년층 지지는 제3 야당 국민민주당으로 몰렸다. 낮은 임금과 치솟는 물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절망에 빠진 세대가 제1 야당이 아닌 작은 야당으로 몰려간 이유는 무엇일까. 구호는 간단하다. “손에 쥐는 소득을 늘려주겠다.”

자민당에 등돌린 청년층

자민당은 2021년 선거 때 20대(40%)와 30대(37%)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20대(20%)와 30대(21%) 지지가 반토막 났다. 이에 비해 70대(30%)와 80대 이상(37%)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자민당은 결국 20~30대와 일부 40대까지 포함한 젊은 세대의 지지를 상실하면서, 2021년 의석수(261석)에서 무려 70석이 줄어드는 대참패를 당했다.

국민민주당은 이번에 전체 465석 가운데 28석을 얻어 의석 점유율 6.0%를 차지했다. 정당별 의석 점유율은 △자민당 41.1% △입헌민주당 31.8% △일본 유신회 8.2%에 이어 제 4당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민·공명 연립여당 의석수(46.2%)의 남은 빈자리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국민민주당은 특히 20~30대 청년층에서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아사히신문 출구조사에 따르면,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국민민주당은 20대(26%)와 30대(21%)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남성은 29%에 달했다. 예상치 못한 높은 득표율로 비례명부에 미처 이름을 올린 후보가 부족해 의석 3석을 다른 정당에 내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일 “청년세대가 자민당 지지에서 일변했다”며 “제 3당 이하의 군소정당이 비례투표에서 절반 이상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교도통신 출구조사를 바탕으로 20~30대와 60대 이상으로 나눠서 각 정당이 얻은 비례대표 지지와 이를 지역구 투표까지 반영해 추산한 가상의 의석수를 내놨다. 결과는 자민당이 30대 이하에서 465석 가운데 149.5석을 얻는데 그쳤다. 같은 방식으로 추산한 2021년(316.5석)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된다.

청년층이 자민당에서 이반한 이유는 단연 경제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닛케이는 “인구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젊은층은 세금문제와 사회보장 개혁이 안되면 자신들의 미래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마모토 겐타로 홋카이도학원대 교수는 “젊은층이 정치에 기대하는 것은 강력한 실행력으로 이들이 아베정권을 지지했던 이유”라며 “그런 점에서 국민민주당 슬로건은 젊은층 손에 잡히는 존재감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청년층 지지가 제1 야당으로 가지 않은 것도 “정권을 강하게 비판만 하는 데 그쳤다”며 “이는 실행력과 반비례한다는 인식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청년층 마음 잡은 국민민주당

최근 일본 주식시장에서 국민민주당 대표인 다마키 유이치로와 관련된 이른바 ‘다마키 테마주’가 강세다. 아르바이트 알선 업체인 ‘타이미’라는 업체는 주가가 14.1% 상승했다. 이른바 ‘103만엔의 벽’으로 불리는 소득세법상 기본소득공제의 상한을 178만엔으로 올려야 한다는 공약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등 인력 파견업체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시장에서 인식됐다. 암호자산 거래소를 운영하는 ‘세래스’도 23.2% 급등했다. 젊은 세대의 고용이나 투자와 연관된 업종과 업체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국민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 △소비세율 10%→5% 감세 △휘발유 가격 일정 수준 이상이면 감세 조치 △장학금 혜택 확대 등을 내걸었다. 특히 연간 소득이 103만엔(약 930만원) 이하에만 해당하는 소득세 면세 구간을 연 178만엔(약 1600만원)으로 상향하겠다고 했다. 상향하자는 근거도 귀에 쏙 들어온다. 다마키는 “이 구간은 1995년 이후 바뀌지 않았다”며 “당시 최저임금이 시간당 611엔이고, 2025년부터 1055엔으로 73% 인상됐다. 103만엔보다 73% 많은 178만엔으로 올리자는 것”이라고 했다.

‘103만엔 벽’은 일본 내에서 오래된 조세 관련 현안이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배우자나 자녀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연 소득이 103만엔을 넘어서면 주된 수입원인 가장의 부양가족 소득공제가 없어진다. 때문에 가족 내에서 주로 여성 배우자나 자녀는 연 소득이 103만엔을 넘지 않도록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아예 취업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103만엔 벽’을 인식하고, 근로시간이나 취업 여부를 조정하는 여성이 61.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마키 대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2029년까지 최저임금 1500엔으로 인상(자민당) △원론적인 최저임금 인상, 소비세 인하(입헌민주당) 등과 같이 선거용으로 급조했거나 막연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소득세 면세수준을 178만엔으로 올리면 △연 200만엔 1인가구는 8만6000엔(약 78만원) △연 300만엔 1인가구는 11만3000엔(약 103만원) △연 700만엔 4인 가구는 15만6200엔(약 142만원)의 감세효과에 따라 실질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숫자로 말했다.

산케이신문은 “잘 팔리지 않던 ‘지하의 실력파 아이돌’로 불렸던 다마키가 돌아왔다”며 “도쿄대를 졸업하고, 옛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으로 ‘대결보다 해결’을 내세우는 ‘정책선도형’ 야당의 모습을 모색해 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싸구려 일본’ 떠나는 청년세대

자민당 이탈과 국민민주당 전폭적 지지 배경에는 청년세대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감이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NHK는 ‘싸구려 일본에서 해외로’라는 특집방송을 통해 청년세대가 일본을 떠나는 배경으로 경제적 궁핍을 들었다. NHK는 “2022년 기준 해외 장기 거주하는 일본인은 130만명으로 20년 전에 비해 60% 증가했다”며 “배경에는 청년층의 탈일본이 있다”고 설명했다.

NHK는 방송에서 호주 시드니에서 500㎞ 떨어진 지방도시에서 20여명의 일본 청년이 일하면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에 있을 때 교사와 자위대 대원 등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다. 방송에서 호주 체재 1년인 전 미용사는 “일본에서 5년간 벌 수 있는 돈을 여기서는 1년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외 워킹홀리데이를 주선하는 관련 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로 가겠다고 신청한 청년만 1만5000명이 넘는다.

일본의 청년세대는 소득도 자산도 기존 세대에 비해 크게 낮다. 금융청이 지난해 조사한 ‘가계의 금융행동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평균 저축액은 214만엔, 30대는 526만엔 수준이다. 이는 40대(825만엔)와 50대(1253만엔)에 비해 크게 낮다. 평균의 함정이 아닌 중앙치로 보면 더 심각하다. 2인 세대로 구성된 20대의 중앙치는 44만엔(약 400만원), 30대는 200만엔(약 1820만원) 수준이다. 일부 안정적 청년을 빼면 다수는 저축과 먼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자민당은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민주당에 손을 내미는 모양새다. 이미 양당은 지난달 31일 간사장 회동을 통해 향후 긴밀한 정책협의를 통해 경제정책과 세제 및 재정정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자민당은 이달 11일 로 예상되는 특별국회 차기 총리 지명선거에서 국민민주당 28명의 중의원이 최소한 입헌민주당 노다 대표만 지지하지 않으면 결선투표에서 다수결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풀이했다.

문제는 국민민주당의 공약을 실현할 재원이다. 일본 정부 추산에 따르면 다마키 대표가 주장하는 소득공제 기준을 178만엔으로 상향할 경우 연간 7조6000억엔(약 70조원) 가량의 세수가 감소한다. 자민당 내에서는 “고소득자가 더 많은 혜택을 받아 불공평한 감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경제에 쓴소리를 많이 했던 노구치 유키오 히토츠바시대학 교수는 자민당이 야당과 부분연합을 위해 무리하게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무원칙한 퍼주기 정책이 지속되고, 재정적자가 확대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금융정상화가 진전되지 않고, 인플레가 악화할 우려가 있어, 일본 경제는 중대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권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신규발행 국채 40년물 금리는 일시적으로 연 2.555%까지 상승했다.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 관계자는 “다마키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재정건전화는 어려워지고, 신용도 하락 우려도 있다”며 “장기채권일수록 금리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외환시장도 불안하다. 닛케이가 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후 일본 정국의 불확실성에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환율은 달러당 160엔을 돌파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