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문’에서 지속가능한 도시경쟁력 찾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 빌바오. 1980년대 이후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쇠퇴하면서 점차 잿빛 도시로 변했다. 청년들은 하나둘 도시를 떠나고, 끝 모를 경기 침체로 도시는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시민들로부터 ‘문화산업의 힘’에 도시의 운명을 걸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1997년 10월 개관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27년이 지난 현재 침체된 도시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해마다 13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오는 빌바오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잿빛 도시가 아니다. 이러한 ‘빌바오 효과’가 비단 해외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광주 동구에서 ‘빌바오 효과’ 찾기
민선 7·8기 출범 이후 지난 6여 년간 광주 동구를 이끌고 있는 필자의 화두는 ‘살고 싶은 도시, 찾고 싶은 도시’였다. 오랜 도심공동화 현상에 따른 구도심 쇠퇴, 고령화, 공동체 붕괴 등이 과거 동구의 현주소였다.
주민들이 더 이상 떠나지 않고 살고 싶게끔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생기 잃은 도시에 재개발 및 도시개발로 활력을 불어넣고, 정주민과 입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을 개선했다. 하지만 이런 양적·물질적 성장에 비례해 주민들 개개인이 정신적 풍요로움도 함께 누리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양극화, 세계 최고의 자살률, 극한경쟁사회 등 ‘우리 도시는 과연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칫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행복한 도시의 원동력을 ‘인문’에서 찾기로 했다.
2018년 인문도시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첫출발로 ‘책 읽는 동구’ 사업을 추진했다. 2020년부터 해마다 4000여권씩, 1만4000여 명의 주민과 책을 통해 생활의 지혜를 나누었고, 주민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다지기 위한 초석을 쌓았다.
그리고 ‘모든 정책에 인문’을 지향한다는 목표 아래 △주민의 인문활동이 일상적으로 활발하게 일어나는 도시 △ 사람 중심의 도시환경을 갖춘 건강한 도시 △주민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계승하며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도시 △주민들의 나눔과 소통이 활발한 따뜻한 공동체 도시 △미래세대의 인문적 소양을 높이고 다양한 꿈을 키워주는 도시 조성이라는 다섯가지 방향의 인문정책을 실천했다.
살고 싶은 도시 만든 '인문의 힘'
이렇게 ‘인문도시’를 위해 부지런히 걸어온 6년의 시간동안 주민의 삶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도시정책에 ‘인문’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지면서 주민의 삶과 도시환경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 등의 도입으로 키워드만 입력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정서적 궁핍, 정신적 빈곤에 대한 답은 ‘인공지능’이 아닌 결국 ‘사람’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사람중심의 인문가치를 실현해 가는 인문도시이며, 그것이 지속가능한 행복도시를 만드는 요소라 생각한다.
동구가 그간 ‘인문도시’와 ‘책 읽는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공을 들인 노력과 결실을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 ‘돈이 되는 일이냐?’고 했던 ‘인문’이 오히려 우리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
특별한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있다고 해서 그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민의 삶 속에 충만하게 스며든 ‘인문’의 향기가 동구를 살고 싶은 도시, 찾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미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광주 동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