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칩 담보로 돈 빌려, 다시 엔비디아칩 대량 매집
‘네오클라우드’ 기업들 성장방식
월가, 110억달러 대출하며 호응
월가 대형 금융기관들이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담보로 내놓는 틈새 기술기업들에게 110억달러 이상을 대출하고 있다.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랙스톤과 핌코, 칼라일, 블랙록 등 월가 대형 금융기관들은 지난 한해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종 부채시장을 만들었다. 엔비디아칩을 담보로 ‘네오클라우드(neocloud)’ 기업들에게 거액을 대출하면서다. 네오클라우드 기업이란 GPU 기반으로 AI에 최적화된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말한다.
코어위브와 크루소, 람다랩스 등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은 GPU로 불리는 수만개의 엔비디아 고성능 컴퓨터칩을 보유하고 있다. GPU는 생성형AI 모델을 만드는 데 핵심으로, 엔비디아 칩은 현재 거액 대출의 담보로 활용되고 있다.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은 대출을 받아 더 많은 엔비디아 반도체를 사들이는 데 쓴다. 엔비디아 역시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의 투자자이면서 공급자다.
FT는 “이는 이른바 실리콘밸리의 ‘GPU경제’”라며 “하지만 일각에선 잠재적으로 위험한 대출, 순환출자, 엔비디아의 AI시장 독점 등 우려사항이 많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반도체 담보물의 가치 지속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성능이 뛰어난 신규 반도체가 시장에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AI에 대한 현재의 투자열풍이 향후 위축될 수도 있다. 헤지펀드 ‘오르소 파트너스’의 네이트 코피카는 “반도체는 가치가 하락하는 자산이지, 상승하는 자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어위브는 가장 규모가 큰 네오클라우드 기업이다. 2017년 암호화폐 채굴을 시작하면서 반도체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 뒤 AI로 전환했다. 코어위브는 현재 북미지역에서 엔비디아 GPU를 가장 많이 확보한 민간 기업이라고 자부한다. 4만5000개 이상을 갖고 있다.
코어위브 최대 투자자 중 한명은 “코어위브 성공은 챗GPT와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할 때 엔비디아로부터 대량의 GPU를 확보하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벤처투자자들과 엔비디아 지원을 받은 코어위브 가치는 지난 18개월새 20억달러에서 190억달러로 치솟았다. 코어위브는 내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계획하고 있다. 가치가 더욱 상승할 전망이다.
코어위브는 지난 12개월간 블랙스톤과 칼라일, 일리노이주 소재 헤지펀드 매그니타 캐피털로부터 100억달러 이상을 대출 받았다. 이번달엔 JP모간체이스와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로부터 6억5000만달러 신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출은 코어위브가 가진 엔비디아 GPU를 담보로 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엔비디아 칩 수천개를 사들이는 데 활용된다. 코어위브는 올해 말 미국과 아시아에 28개의 데이터센터를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해 초 대비 9배 늘어난 수치다.
이는 코어위브가 레버리지를 극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코어위브는 지난해 8월 블랙스톤의 10억달러 대출을 포함해 23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고 밝혔다. 당시 코어위브의 연매출은 2500만달러,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은 약 800만달러 마이너스였다. 이후 매출이 급등해 올해는 약 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어위브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대규모 계약을 협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 활용했다. 계약이 성사된다면 향후 수년 동안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었다. MS는 오픈AI의 최대 후원기업이다. 당시 협상에 정통한 한 인사는 “MS와의 계약은 매우 중요했다”며 “코어위브는 계약을 따냈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에 ‘우리는 GPU 20억달러어치가 필요하다. 자금을 대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코어위브가 대규모 자금을 빌리는 데 성공하면서, 보다 많은 금융기관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맥쿼리는 올해 4월 람다랩스에 5억달러를 빌려줬다. 크루소는 지난해 뉴욕 투자자 ‘어퍼90’에서 2억달러를 빌렸다. 또 최근 피터 틸의 파운더스펀드 등 투자자들로부터 5억달러를 확보했다. 크루소는 지난달 대체자산 투자기업 ‘블루아울캐피털’과 34억달러 거래를 완료했다. 이 자금으로 텍사스에 신규 데이터센터를 지어 오라클과 오픈AI에 컴퓨팅 능력을 대여할 계획이다.
엔비디아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향후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선호 파트너’로 H100칩 수만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미래성장 역시 엔비디아의 새로운 블랙웰칩을 그 정도 규모로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엔비디아는 자체적으로 투자하는 특정 고객들이라고 해도 우선 접근권을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산하 벤처투자기업 ‘엔벤처스’의 대표 모하메드 시딕은 FT에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GPU 임대가격도 최근 몇달간 무너졌다. GPU 1시간 컴퓨팅 용량은 올해 초 8달러에서 현재 약 2달러로 급락했다.
AI칩 수요가 지속적으로 커진다고 해도, 공급 역시 개선되고 있다. 일부 기술기업들은 자체적으로 AI칩을 개발하고 있다. AMD 등 경쟁기업들도 고성능 GPU를 내놓으며 엔비디아에 출사표를 던졌다. 코어위브에 거액을 대출한 기관 중 한 곳은 “1년 전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는 건 성공으로 가는 티켓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