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중·일 3국의 민간소비 부진
한국의 소비부진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금주 발표된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3분기 소매판매액 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하면서 2022년 2분기 이후 10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역대 최장 기간의 소비 위축이다. IMF 외환위기 때도 5개 분기 연속 감소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최근의 소비부진은 심각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3국의 민간소비가 공통적으로 부진하다는 사실이다.
가계부채 짓눌린 한국, 과잉저축 발목잡힌 중국
먼저 한국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가계부채와 부동산에 민간소비가 짓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계기관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지만 국제금융협회(IIF) 기준으로는 지난 1분기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8.9%를 기록하고 있다. 조사대상 34개 중 1위다. 최근 수년 동안 늘어난 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택 구입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택투자용 자금은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매몰코스트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주택가격이 상승하더라도 미국처럼 이를 유동화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역모기지론이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주택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대부분은 부동산에 묶여있는 자금에 불과하다. 반면 금융기관에 내야 할 원리금 부담은 크기 때문에 가계가 쓸 돈은 늘 부족하다.
다음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내부 수요(소비)와 해외 수요(수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쌍순환 전략’을 내놓은 지 4년여가 돼 가고 있지만 중국의 소비에는 여전히 냉기가 흐르고 있다. 중국의 9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에 그쳤다.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올해 내내 2~3% 내외에 머무르며,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10% 전후 성장률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소비 부진은 한국과 원인이 다르다. 한국은 가계의 과잉부채가 소비를 잠식하고 있지만 중국은 과잉저축이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24년 중국의 가계저축률은 3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높은 저축률은 사회안전망 미비와 고령화의 산물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공적 사회보장은 매우 빈한하게 설계돼 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연금인 ‘전국사회보장기금’이 관리하는 자산은 노동자 1인당 7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의료보험 역시 연간 한도 400달러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급격한 고령화가 더해지고 있다. 부모세대에 대한 부양 부담과 더불어 스스로가 공적안전망이 부재한 가운데 오래 살아야 한다. 쉽게 주머니를 열기가 힘들다.
마지막으로 일본이다. 일본의 9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0.5% 증가에 그쳐 2022년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소비는 고령화에 발목 잡히고 있다. 최근에도 달러당 150엔대를 넘나들고 있는 엔화의 장기적 약세는 일본 기업들의 수출을 늘렸고, 수입물가를 높여서 디플레이션 탈피에도 기여했다. 그렇지만 엔화약세와 물가상승은 새로운 내부모순을 불러왔는데 일본 인구의 30%에 달하는 고령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아베와 기시다 내각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호응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렸지만 연금으로 살아가는 고령층의 소득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금생활자들인 고령자들의 실질구매력은 생활물가 상승분만큼 악화됐다. 집권 자민당이 최근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도 저금리와 엔화약세를 유도한 정책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고령자들의 이해에 반했기 때문이다.
민간소비 정체,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괴리 불러
한·중·일 동북아 3국은 수출 강국이다. 올해도 수출 호조가 3개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출호조가 내수로 이어지는 낙수효과는 현저히 약해졌고, 민간소비의 정체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괴리를 불러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