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업종별 희비 가른다…기업들 촉각
미국 대선 투표와 개표가 속속 진행되는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누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미국 기업들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두 후보의 경제공약을 중심으로 미 대선결과에 따라 웃거나 울게 될 업종과 기업 등을 짚었다.
◆에너지 = 트럼프와 해리스의 입장차가 가장 확연한 업종이다. 트럼프가 승리하면 석유·가스 업계가 반색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미국 에너지기업들을 옥죄는 바이든정부의 규제를 전부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는 신규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신속 승인하고,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없애고 전기차·재생에너지를 장려하는 인센티브를 삭감할 계획이다. 물론 미 의회과 법원이 트럼프의 계획을 지연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연방정부 승인이 필요한 해상풍력단지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좌절될 수 있다.
해리스가 승리하면 바이든정부의 주요 성과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유지될 전망이다. 이 법을 통해 청정에너지업계로 흘러들어갈 자금만 약 4500억달러에 달한다. 트럼프는 해당 법을 폐기할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한편 원자력은 두 후보 모두 지지와 지원을 천명한 거의 유일한 업종이다.
◆기술 = 두 후보 모두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AI) 야심을 방해할 수 있다. 바이든정부는 통제를 벗어난 AI 리스크를 막기 위해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해리스 역시 부통령으로 이에 일조했다. 트럼프는 이 행정명령을 폐기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만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 중대한 도전과제다.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 반도체 기술을 훔쳐간다고 비난한다. 엔비디아나 애플 등은 대만 TSMC에 첨단반도체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대만제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한다면 AI칩 가격이 상승한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을 더욱 옥죌 수 있다.
트럼프보다 유화적인 해리스의 이민정책은 글로벌 인재들의 미국 유입을 지속시킬 수 있다. 넉넉한 인재풀은 실리콘밸리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AI 리스크에 대한 해리스의 관점은 또 다른 종류의 장벽이 된다.
◆은행·금융 = 바이든정부는 미국 은행들에 더 많은 자기자본 확충을 요구해왔다. 또 연방통신위원회(FTC) 라이나 칸 의장이나 법무부 반독점국장 조너선 캔터 등이 반독점법 고삐를 바싹 당기고 있다. 월가는 이에 반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그와 관련한 규제가 느슨해질 수 있다. 또 사모자본과 기후위기 등에 대해 기업들에게 더 많은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미증권감독위원회(SEC)의 조치도 약화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정부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ESG 기준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또 신용카드 이자를 약 10%로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은행들이 적극 반대하는 지점이다.
해리스는 바이든정부보다 기업친화적일 것임을 예고했다. SEC와 FTC에 새로운 수장을 임명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화할 경우 민주당 진보 의원들의 저항에 직면할 전망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만약 칸이 경질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소비재 = 해리스가 승리한다면 미국 식음료기업들은 가격책정 재량권을 상당 부분 잃을 수 있다. 해리스는 취임 100일 내 식음료 기업들의 급격한 가격인상에 대해 연방정부 차원의 제한법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의 경우 미국인들의 식탁물가를 잡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수입품에 전면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그의 계획에 경제학자들은 정반대 결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한다. 곡물과 설탕 등을 포함한 원자재 수입품 관세는 상품가격을 밀어올리게 된다. 식음료 제조사들은 마진 확보를 위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밖에 없다. 최근 전미소매업연맹은 트럼프 2기 관세가 전면 실행된다면 미국 소비자들이 첫 1년 동안 구매력 기준 460억~780억달러를 상실할 것으로 추산했다.
◆자동차·항공 = 트럼프정부는 고전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 올해 3분기 미국 신규자동차 판매에서 전기차는 약 9% 비중에 그쳤다. 트럼프가 공약한 배출가스 규제 철폐는 전통의 제조사들이 전기차를 개발할 의지를 꺾게 된다. 트럼프는 또 저렴한 전기차 구매를 위해 바이든정부가 제공하는 7500달러 세액공제를 없앨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승리는 항공업계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품질 문제와 파업 등으로 기력을 소진한 보잉사는 중국에서 보다 많은 항공기를 판매하면서 회복하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대중국 고율관세가 현실화되면 중국 역시 보복관세로 맞서거나 보잉 등 주요 미국기업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버티컬리서치파트너스의 애널리스트 로버트 스탤러드는 “보잉은 상당기간 중국에서 항공기 신규주문을 받지 못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보잉의 가뭄은 더 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