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권 위기 누가 불렀나 ② 김건희 여사
개국공신 넘어 ‘그림자 권력’ 군림 의혹…위기 진앙지
검사 사표 말리고 든든한 내조 … “초기 남편 정무·인맥 70% 책임져”
집권 뒤 명품백·공천개입 의혹 등 잇달아 … “대통령실에 여사 라인”
윤석열정권이 오는 10일 임기 반환점을 돈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지만 레임덕(Lame duck)을 넘어 데드덕(Dead duck)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위기론이 심상찮다. 역대 대통령 임기 말에나 볼 법한 10%대 국정지지도를 이미 기록했다. 전례 없는 임기중반 데드덕 위기는 누가 초래한 것일까.
여론과 정치권은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개국공신으로 꼽히지만 법적 권한이 없는 김 여사가 집권 뒤에도 ‘그림자 권력’으로 군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2017년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은 김 여사의 ‘그림자 권력’ 가능성에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지난 1일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10월 29~31일, 전화면접, 95% 신뢰수준 ±3.1%p,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 부정평가 이유로 ‘김 여사 문제’(17%)가 가장 많이 꼽혔다. 김 여사가 윤석열정권 위기의 진앙지로 떠오른 것이다.
지금은 위기 진앙지로 전락했지만 김 여사는 개국공신으로 불렸다. 김 여사와 친분이 있는 여권 인사는 “2012년 부부의 연을 맺은 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이 서울지검장과 검찰총장, 대통령으로 승승장구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만 했기 때문에 정무적 판단은 익숙지 않았다. 인맥도 두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때는 김 여사가 남편 정무의 70%, 인맥의 70%를 책임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하나. 윤 대통령은 지난 2014년 국정원 댓글 수사로 인해 대구고검에 좌천성 발령이 나자, 사표를 낼 심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여사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사표 뜻을 접었고 결국 2016년 12월 ‘박영수 특검’ 수사팀장으로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여권 인사는 “김 여사는 윤 검사에게 흠 잡힐 일에는 근처에도 가지 말라며 용돈까지 넉넉히 챙겨줄 정도로 세심한 내조를 한 것으로 안다. 윤 대통령이 중요한 갈림길에 설 때마다 성공의 길을 조언했다. 정치 입문 이후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다. 윤 검사가 대통령이 되는데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집권을 전후해 김 여사의 비중이 커진 만큼 김 여사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허위학력 의혹이 잇따르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잡음은 계속됐다. △2022년 1월 김 여사의 ‘7시간 통화 녹취’ 공개 △2022년 6월 나토정상회의 순방에 이원모 당시 대통령실 비서관 부인 신 모씨 ‘사적 수행’ 논란 △2023년 6월 양평 고속도로 ‘김 여사 일가’ 특혜 의혹 △2023년 11월 명품백 수수 의혹 △2024년 9월 김영선 전 의원 공천개입 의혹 △2024년 10월 명품백 의혹·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불기소 처분 등이 잇따랐다.
김 여사가 ‘그림자 권력’으로 군림한 흔적으로 꼽히는 장면 하나. 친윤 전직의원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사건을 회고했다. 이 전직의원은 “인수위 인사를 맡았던 실무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떠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실세로 불리던 사람이어서 주변의 충격이 컸다. 소위 여사 라인의 대통령실 발탁을 놓고 의견차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거론한 ‘여사 라인’도 ‘그림자 권력’의 흔적으로 지목된다. 김 여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일부 비서관과 행정관은 ‘대통령 참모’ 역할보다 ‘김 여사 참모’ 역할에 무게를 둔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대통령실 참모는 “소위 여사 라인은 업무 초점이 대통령보다 여사에게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른 참모는 “여사쪽에서 만든 보도자료나 보도사진은 일종의 성역으로 통했다. 누구도 건들면 안됐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계륵으로 전락한 김 여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전직 대통령실 참모는 “(윤 대통령) 자신이 이 자리(대통령)에 오르는 데 여사 공이 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여사 몫도 일부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른 참모는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여사 얘기만 꺼내면 고개를 돌렸다. 여사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대통령이 여사 문제를 키운 셈”이라고 전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