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귀환, 국제사회 초긴장
EU 정상들 “안보”, “무역” 촉각 … 중국·러시아는 신중모드로 말 아껴
유럽연합(EU) 등 주요국 정상들은 트럼프 당선이 확실시되자마자 축하 인사를 쏟아내며 협력을 강조했으나 안보, 무역 마찰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공연히 주장해 온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론’이나 우크라이나 지원 회의론이 트럼프 집권 2기에 어떤 정책변화를 가져올지 속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등 동맹국들은 방위비 부담 증가나 안보우산 약화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6일 당선 축하 인사를 하면서 중국·러시아·북한·이란 간 심화하는 연대를 포함한 국제 안보 도전을 열거하면서 나토 협력이 집단안보를 수호하고 경제를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즉각 전화 통화를 하고 ‘자주적인 유럽’을 강조했고, 양국 국방장관도 긴급 회동하기로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온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은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는 축하 메시지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호소를 담았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지 하루만인 7일(현지시간) EU 정상들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모여 제5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이주 및 경제 현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트럼프 당선에 따른 후폭풍도 자연스레 대화 주제가 될 전망이다.
이번 회의에는 EU 27개 회원국을 포함해 47개국 정상이 초청됐다. EU에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정상회의 상임의장,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 지도부 3인이 모두 참석하고,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참석한다.
EPC 정상회의에 이어 EU 정상들의 별도 만찬 회동, 8일에는 EU 비공식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회의 후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EU 고위 당국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EU-미국 관계의 중요성, 우크라이나 지속 지원 등에 관한 ‘공통된 메시지’를 조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회의 참석 가능성이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유럽 이웃 국가들의 추가 지원을 호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AP 통신은 짚었다.
그러나 EU 하반기 순회의장국인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겠다고 예고하면서 분열 조짐도 감지된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유럽이 미국 없이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재정적 지원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게 이유다.
무역에 미칠 파장도 주요한 관심사다. 트럼프 당선인이 유세 과정에서 모든 수입품에 대해 최고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EU 차원의 대응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전날 트럼프 당선인을 향해 “수백만개의 일자리와 수십억(유로)의 통상·투자가 양자 경제관계의 역동성과 안정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도 조심스럽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오후 11시 30분(현지시간)께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서면 입장문에서 “우리는 미국 인민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트럼프 선생의 대통령 당선에 축하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매체들의 당선 확정 보도가 나오기 전인 오후 3시 정례 브리핑에선 대중국 관세를 올리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가정적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또 “이번 미국 대선 결과가 중국의 외교 정책 혹은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는 “우리의 대미 정책은 일관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상호존중·평화공존·협력호혜의 원칙에 따라 중미 관계를 대하고 처리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첫 집권 시절 관세 전쟁을 벌이며 중국과 각을 세운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국산 제품에 대한 60%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든 것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모든 것을 관찰한 뒤 구체적인 단어들과 조치들을 보고 결론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협상을 통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신속한 종전을 공언했고 러시아에 다소 우호적 태도를 내비친 만큼 러시아 입장에선 ‘현상 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