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에 고발장 서식 이용, 벌금형
제보하려 인적사항 등 기재
1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익고발자가 경찰 민원포털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고발장 서식에 맞춰 인적사항을 기재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판결로 내부 고발자를 범죄자로 몰아 공익고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방법원 형사12단독 지현경 판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직장 내 초과근무 수당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사건을 내부 고발하면서 ‘고발장 서식’이 요구한 대로 피고발인 B씨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고발장에 적어 한 경찰서에 제출했다. A씨가 작성한 고발장은 경찰 민원포털 누리집에서 제공하고 있는 공식적인 서식이다.
A씨는 회사에서 특정 목적으로 발송한 공문에 나온 B씨 개인정보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A씨를 수사기관에 고소했고, 검찰은 A씨의 행위가 ‘개인정보 누설’에 해당한다며 재판에 넘겼다. A씨가 정보 주체인 B씨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이유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는 정보 주체로부터 동의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공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A씨는 재판에서 “공익 목적으로 고발하면서 피고발인을 명확히 하려고 개인정보를 기재했을 뿐 법 위반 고의가 없었다”며 “설사 위반이더라도 (공익적 목적이므로) 형법 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주지 않았다.
지 판사는 “피고인이 고소나 민사소송 제기에 사용될 수 있음을 전제로 공문을 제공받지 않은 데다 B씨 동의도 받지 않았다”며 “또 공익 목적 고발이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고발장에 피고발인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꼭 기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 경우 이름만 기재해도 수사기관이 피고발인을 충분히 특정할 수 있었다”며 “공익적 목적이라도 피고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이 적절하지 않아 보이며 다른 수단·방법이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